◇많이 읽는 것이 유일한 장점
지난주 서울대 인문관 김교수의 연구실을 찾았다. 너댓평 남짓한 공간에 들어서니 곰삭은 책 냄새가 먼저 손님을 맞았다. 계간지 가을호를 읽던 그는 “축하드립니다”는 기자의 말에 생전 처음 선생님께 칭찬을 들어보는 소년 마냥 계면쩍어했다.
김교수는 “작가들이 고생해서 쓴 글을 실례가 안될 정도로 풀이해 놓았을 뿐, 무슨 거창한 사상이 든 것도 아니다”는 겸사로 운을 뗐다. “많이 읽는 것이 내 유일한 장점”이고 “가진 것이 언어밖에 없어 썼을 뿐”이라고.
그는 다독도 “시간이 많이 남아서” 가능했던 일이었다고 고백(?)했다. “대인관계에 재능이 없는 탓에 사람들을 많이 만나지 않으니 책을 많이 읽을 수 밖에요”.
그는 요즘도 새벽 3시30분부터 밤 10시까지 거의 모든 시간을 독서와 집필에 몰두하고 있다. 어느 에꼴에도 끼지않고 평단의 ‘재야’를 지킨 것도 무슨 소신 때문이 아니라 이런 성격 때문이라고 했다.
“왜 그렇게 많은 소설을 읽느냐”는 우문에는 “오직 내 자신을 위해서”라고 대답했다. “작가가 나보다 똑똑한 것은 아니지만, 내가 방황할 때 그네들의 작품속에서 내 갈길을 찾는다 말이오. 그러므로 문학작품은 내 인생에 등불 같은 스승이지요”
그 ‘스승’에 대한 애정은 최근 문학을 적극적으로 평가하는 데서도 엿볼 수 있었다. “90년대 문학의 기본틀은 사회적 역사적 상상력을 벗어나 생물적인 상상력으로 옮겨간 것이지요. ‘나’라는 동물적 개체의 존재에 대해 고민하는 것은 세계적 추세이기도 하거든요”. 윤대녕의 ‘은어낚시통신’을 시작으로 우리문학은 세계문학과 연결됐다는데, 과문한 탓인지 기자는 쉬 납득하기 어려웠다.
◇비평가는 작가에 빚진 사람
또 그에겐 비평의 임무도 인생의 ‘스승’인 작가를 극진히 보살피는 제자의 수발과 다름없어 보였다. “비평가란 작가에게 부채를 진 사람”이라거나 “비평은 작품을 칭찬하는 정교한 기술”이라고 선선히 말할 정도였다.
젊은 작가들에게 충고 한마디를 부탁했더니 “그런 것 없다”며 일언지하에 거절하는 것도 짐작할 만했다.
평생 써본 감투라고는 순번제로 맡는 국문과 학과장이 유일하다 할 정도로 30년 가까이 문학비평의 외길을 걸어온 김교수는 내년 8월이면 이 연구실을 떠난다. 정년 이후 계획이 있나고 물었더니 대답이 생뚱맞다. “읽고 또 써야죠.”
마지막으로 김교수는 이 말만은 꼭 써달라고 간곡히 부탁했다.
“팔리지도 않을 책을 무슨 의의가 있겠거니 착각해서 내준 출판사에 감사드립니다.”
<윤정훈기자>digan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