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질량의 근원을 찾아라" 김영기 캘리포니아大 교수

  • 입력 2000년 8월 30일 18시 41분


《20여년 전까지 고 이휘소 박사가 이론물리학자로 이름을 날렸던 미국 페르미국립가속기연구소에서 또 한 명의 한국 과학자가 입자물리학의 거목으로 우뚝 섰다. 질량의 근원인 힉스 입자를 찾기 위해 구슬땀을 흘리고 있는 캘리포니아대(버클리)의 김영기 교수가 바로 그 주인공이다. 시카고 근교의 페르미연구소로 찾아가 김 교수가 풀고 있는 우주와 물질의 수수께끼에 대해 들어보았다. 》

지난 7월 20일은 입자물리학자들에게 축배의 날이었다. 물질을 구성하는 12개의 기본입자들 가운데 발견되지 않은 유일한 입자인 타우 뉴트리노를 찾아낸 것이다. 영국의 톰슨이 1897년 최초의 기본입자인 전자를 발견한지 한 세기만에 6개의 쿼크와 6개의 경입자를 모두 찾아낸 것이다.

▼21세기 물리학의 숙제▼

입자들의 주기율표는 완성됐지만 21세기에 물리학이 넘어야할 또 다른 큰 산이 있다. 힉스란 입자를 찾는 것이다. 힉스는 물질을 구성하지는 않지만, 입자가 질량을 갖게 한다. 우리는 입자나 물질이 당연히 질량을 가질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지만, 입자물리학의 기본 뼈대라 할 수 있는 ‘표준모형’은 질량 생성의 문제를 힉스란 입자를 도입함으로써 해결하고 있다. 힉스가 없다면 우주의 질량도 우리의 몸무게도 0이다.

페르미국립가속기연구소가 타우 뉴트리노 발견 사실을 발표한 직후 기자는 힉스 입자 사냥에 나서고 있는 한국인 입자물리학자를 만나러 시카고 근교에 있는 페르미연구소로 차를 몰았다. 캘리포니아대(버클리) 물리학과 김영기 교수(38)를 만나기 위해서였다.

김 교수는 1년 동안 수업을 중단하고 페르미연구소에 와 상주하면서 힉스 입자를 찾는 데 쓰는 거대한 검출기를 만드는 책임을 맡고 있다. CDF란 이름의 이 검출기는 높이가 3층 건물만 하고, 무게는 4천5백t에 이른다.

내년 3월 이 가속기가 완성되면 빛에 가까운 속도로 가속된 양성자와 반양성자가 서로 반대 방향에서 오면서 정면 충돌하게 되고, 검출기가 이 때 나온 조각들 속에 혹시 있을지도 모르는 힉스 입자를 찾게 된다.

검출기는 43개 대학과 2개 연구소가 각자 부품을 만들어 이곳으로 가져와 조립하는 방법으로 건설되고 있다. 김 교수는 각 기관들이 파견한 나온 2백 명의 연구원들과 기술자들을 감독해 검출기를 가동시키는 ‘디텍터 커미셔너’란 직책을 맡고 있다.

김 교수는 “힉스는 단순히 수많은 소립자 가운데 하나가 아니라 질량의 근원을 설명하기 때문에 입자물리학에서는 아주 중요한 문제 가운데 하나다”고 강조한다

하지만 힉스 입자는 자연 속에서 그냥은 볼 수 없다. 따라서 가속기로 입자를 충돌시켜 이 에너지로 힉스 입자를 생성해야 한다. 힉스 입자는 생성되자마자 10(-25승)초 이내에 다른 입자들로 붕괴되는 데, 이들 붕괴된 입자들을 분석함으로써 힉스 입자의 존재를 알 수 있다.

김 교수는 “내년에 실험이 시작되는 데 개량한 가속기가 성능을 제대로 발휘해준다면 20배 정도 충돌 횟수를 늘릴 수 있다”고 말한다. 양성자와 반양성자의 충돌 횟수가 많아질수록 힉스처럼 큰 질량의 입자를 만들어낼 가능성이 커진다는 것이다.

김 교수가 지난 95년에 측정과 이론적인 연구를 통해 힉스의 질량을 추정한 논문에 따르면 힉스는 대략 100―200 GeV 사이의 질량을 갖고 있다. 페르미연구소의 가속기 테바트론은 180 GeV의 입자를 찾아낼 수 있는 능력을 갖고 있어, 김 교수의 추정치가 맞다면 힉스를 찾아낼 가능성은 상당히 높다.

1백 GeV 정도의 질량까지 찾아낼 수 있는 유럽의 입자물리연구소(CERN)의 LEP2 가속기에서는 올 여름까지 힉스를 찾기 위한 실험이 진행됐지만 아직 찾아내지 못한 채 이번 여름이면 실험이 끝나게 된다.

그래서 유럽연합은 이 보다 훨씬 강력한 가속기인 대형강입자가속기(LHC)를 건설 중이다. LHC가 완공되면 질량 8백 GeV까지 입자를 찾을 수 있다. 하지만 이 시설을 가지고 실험에 들어갈 수 있는 것은 2006년에나 가능하다.

그래서 페르미연구소는 기존의 가속기를 보완해 충돌 횟수를 늘리고 더 성능이 뛰어난 검출기로 교체해 먼저 힉스를 찾으려 하고 있다.

▼매일 새벽 6시 출근▼

김 교수는 부품들을 조립하느라 요즘 눈코 뜰 새 없이 바쁘다. 새벽 6시에 나와 밤사이에 온 메일을 체크하고, 아직 이른 아침인 7시부터 본격적인 작업을 시작한다.

“여러 개의 부품을 합치다보면 문제가 생길 때가 많다. 각 대학이 부품을 만들 때에는 자기 것만 생각하는데, 붙이다 보면 부품들끼리 서로 영향을 주거나, 잘 맞지 않는 일이 생긴다. 그 때마다 관계자들을 모아 회의를 열고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기자가 김 교수와 만나는 동안에도 작업자들이 사무실로 찾아와 작업지시를 내려달라고 요구해 여러 차례 인터뷰가 중단됐다. 몸집이 두 배는 돼 보이는 연구원들이 자그마한 체구의 동양 여성에게 작업 지시를 받는 것을 보면서 한편으로는 웃음이 나왔다.

실제로 김 교수는 키가 작은데다 동양 사람 특유의 어린 얼굴 때문에 이곳 페르미연구소에서 처음 만나는 사람들로부터 대학원생이나 대학생 취급을 당해, 다른 사람들이 자신의 존재를 믿어주기까지 한참 시간이 걸린다고 털어놓았다.

▼'차세대 고학자 20人' 선정▼

하지만 김 교수는 작은 거인이다. 미국의 대중과학지 디스커버는 다음달 호에 미국의 차세대 과학자 20명을 꼽아 소개할 예정인데, 김 교수는 이 가운데 한 명에 꼽혔을 만큼 물리학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성공의 비결을 묻자 김 교수는 아버지가 늘 강조해온 ‘정신 집중’을 잊지 않고 살았다고 한다. 과수원 농사를 지으면서 자식들 교육을 철두철미하게 시켰던 아버지는 ‘어디에 가든 집중만 하면 무엇이든 할 수 있다’고 항상 강조하셨다고 한다.

“어려서부터 수학을 좋아했어요. 중학교 2학년 때 경북지역 수학 경시대회에 나가서 1등상을 타기도 했어요. 이 때 도 대회를 준비하느라 학교에 모여 훈련을 받았는 데 이 때 물리, 생물, 화학 등을 실험해 보면서 과학자가 되기로 결심했지요.”

이렇게 해서 고려대에 진학한 그녀는 고 이휘소 박사의 제자인 강주상 교수로부터 석사학위를 받았다. 이런 김영기 교수가 이휘소 박사가 이론물리실장으로서 이름을 날렸던 페르미연구소에서 차세대 주자로 꼽히고 있는 것은 흥미로운 일이다.

1977년 불의의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난 이휘소 박사가 못 푼 노벨상의 꿈이 언젠가 한 한국인 여성물리학자에 의해 풀리게 될지도 모른다.

(김교수의 자세한 인터뷰는 한민족과학기술자네트웍의 홈페이지(kosen.oasis.or.kr)에서 볼 수 있다.)

<시카고〓신동호동아사이언스기자>dongh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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