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부터 공주처럼 살아요. 말도 그렇게 하고.”(펙)
“(웃음) 별 말 씀을….”(헵번)
어쩐지 이상하다. 이미 죽은 헵번이 환생해 서울에 나타날 리도 없지만 대화 내용도 좀 수상하다.
뮤지컬로 국내 초연되는 ‘로마의 휴일’에서 앤공주로 캐스팅된 김선경과 신문기자 조역의 유인촌. 뮤지컬 속 헵번과 펙이 되기 위한 첫 만남이었다.
김선경은 지난달 앤공주로 확정되는 순간부터 기쁨은 물론 두려움에 휩싸였다고 솔직하게 고백한다. 오디션을 통해 100 대 1의 치열한 경쟁을 뚫었다. 하지만 제 자리를 잡지 못한 10여년간의 TV 경험과 ‘미녀와 야수’ ‘드라큘라’가 알려진 뮤지컬 경력의 전부라는 점을 감안하면 자신도 놀랄 만큼 파격적인 행운이었다.
이름 꽤나 알려진 배우들도 나이와 오디션의 부담을 이유로 포기할 정도로 ‘죽은 헵번’은 아직도 무서웠다.
“그레고리 펙은 유선배와 그렇게 나이 차가 있어 보이지 않잖아요. ‘로마의 휴일’이 53년 작품입니다. 죽은 뒤에도 50년 가깝게 세상 남자들의 환상적인 사랑과 숭배를 받아온 헵번의 이미지와 싸운다는 것 자체가 힘든 일입니다. ”
32세의 ‘한국의 오드리 헵번’은 또 “헵번은 당시 24세였다”며 불리함을 호소했다.
10월28일부터 서울 서초동 오페라극장 무대에 오르는 이 작품은 영화에서 뮤지컬로는 세계 최초로 공연된 일본 ‘토호 뮤직코퍼레이션’판을 원판으로 삼고 있다. 2막으로 구성된 이 작품은 앤공주의 탈출과 미장원 장면, ‘진실의 입’, 앤공주와 조가 눈으로 말하는 기자회견장의 모습 등 영화의 익숙한 장면들을 노래와 춤으로 담아낸다.
그는 “헵번의 순수함, 그리고 거기에서 묻어나오는 귀여움, 조와의 사랑 그러나 제자리로 돌아오는 성숙함을 함께 담겠다”고 말했다. 고등학교 때 처음 ‘만난’ 앤은 너무 무심한 표정으로 조와 악수를 나눠 그를 울렸지만 성인이 된 뒤에는 가슴이 아련하게 저미게 만들었다고 한다.
“곧 오드리 헵번 스타일로 헤어스타일도 맞춰야죠. 유인촌선배와 스틸 사진을 찍으면서 이 분을 진짜 연인으로 사랑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두팔에 꼭 안기면서. 만약 이 작품이 실패한다면 사라져야죠.”
<김갑식기자>gs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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