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名士칼럼]노재봉/內治부터 살펴라

  • 입력 2000년 9월 14일 19시 28분


요즈음 남북관계가 전개되는 것을 보고, 언로(言路)를 제대로 갖지 못한 사람들은 모든 것이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이 10월 중순에 발표되는 노벨상을 겨냥한 것이라는 얘기들을 많이 한다. 답답함에서 나오는 얘기들이라고 여겨진다. 개인적인 동기로 남북관계를 납득하기 어려운 방향으로 몰아가고 있다는 판단인 듯한데, 설마 어디 대통령이라는 분이 그렇게 졸렬할 수야 있겠는가. 그리고 일이 잘 풀려서 설령 노벨상을 받는다면, 당연히 축하할 일이다. 하지만, 그런 불평 가운데에는 이 나라의 정치인들에 대한 깊은 불신이 깔려 있고 나라 형편에 대한 걱정이 도사리고 있는 것만은 부인하기 어렵다.

무릇 외교라는 것은 나라 안의 힘과 생각의 결속이 전제되지 않으면 성공하기 어렵다는 것은 상식에 속하는 일이다. 그런 점에서 보는 이 정부의 대내(對內) 통치행위는 우려되는 문제가 하나 둘이 아닌성 싶다.

우선 시장경제주의를 표방하고 나온 정부로서 그에 합당한 기본조건들을 갖추는데 얼마나 관심을 기울여 왔는가를 따져볼 수밖에 없다. 산업사회에서 자율성을 중심으로 하는 시장경제를 영위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정부의 서비스 기능이 투명하게 합리적으로 강화되지 않고는 도저히 효율성을 기대하기 어려운 것이다. 6·25전쟁 이후의 최대 국난으로 규정되었던 외환위기는 단순히 외환문제가 아니라 개발연대의 유산으로 내려온 정부 기능을 전면적으로 개혁해야 하는 문제였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이것은 정치논리에 밀려서 아직까지도 분명한 노선을 가늠하기 어려운 채 남아 있다.

일상의 식탁에 오르는 음식 하나도 안심하고 먹을 수 없게 된 것을 누가 사소한 문제라 하겠는가. 의료대란의 원인 제공처는 어디에 있는가. 단식투쟁까지 하면서 관철시킨 지방자치가 이렇게 환경을 파괴시키기 위한 것은 아니었을텐데, 지금 형편은 어떤가. 민주주의가 국민의 돈을 효과적으로 관리하는데 그 요체가 있음을 누구보다 잘 아는 김대통령인데 세금으로 만들어지는 정부의 돈은 지금 어떻게 쓰여지고 있는가.

권력적인 이익 추구에만 점점 통치력이 집중되어 가는 가운데, 날로 치열해지는 국제경쟁 속에서 전반적인 경쟁력이 떨어져 가는 이유가 정치의 잘못에서 비롯되고 있다는 것은 심각하게 고려돼야 할 것이다. 내정에 대한 지금과 같은 정치력을 가지고는 밖의 남북문제를 바른 방향으로 잡아간다고 하더라도 효과적으로 다루기는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남북문제가 하도 엄청난 국가적인 문제라서, 그곳에 조금만 숨통이 트인다 싶으면, 설령 그것이 형식적인 것이라고 해도 매우 큰 감상적인 반응을 불러 일으키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라 치자. 그렇더라도, 그것으로 다른 문제들이 호도될 수 있는 상황은 아니다. 긴장해소가 목표라니까 이산가족의 북측 방문단 대표의 얼굴을 보고 국가적 희롱 임을 알면서도 말없이 지켜보고 있은 침묵의 의미를 헤아려야 할 것이다.

김대통령의 말대로 북이 통미봉한(通美封韓)이 안되니까 정상회담에 호응했다는 것은 옳은 지적이다. 지금은 이한제미(以韓制美)로 방향을 선회한 듯하다. 그 정책과 햇볕정책이 맞아 떨어져 정삼회담이 가능했던 것인데, 그 결과로 이쪽이 역으로 햇볕을 맞고 있는 분위기는 참으로 역설적인 현상이다. 공산주의자임을 공언하면서 김정일(金正日)은 자기의 힘이 노동자가 아니라 군력(軍力)에서 나온다고 했고, 그쪽 어느 고위간부는 식량으로 인민을 통제한다고도 했다. 그 군사는 현재 지상최대의 상비군이다. 그리고 그 권력체제는 인류역사상 가장 완벽한 군사적 전체주의 체제임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런 상대에게 이쪽은 지금 신판 조공(朝貢)과 같은 조건없는 뇌물외교로 힘만 실어주고 있다.

김대통령의 말대도 이삼십년이 걸릴 일을 두고 성급한 비판이라 할지 모르겠으나, 이한제미라는 그쪽 목표를 정부가 모를리 없다고 친다면, 그에 대해 맞장구를 쳐주는 이유가 무엇인지 정말 모를 일이다. 이 모든 것이 혹시 정권 재창출을 위해 무리수를 두고 있는게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일고 있는 것에 정치권은 깊은 관심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노재봉(전 국무총리·명지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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