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너지 세제 개편안이 특히 그렇다. 설득 논리가 있다고 보는데 사전 노력이 거의 없었다. 국민은 ‘오른다’는 사실 자체에 심리적 저항선을 깔고 있다. 유가가 연일 최고가를 기록하고 있는 가운데 얼마 전 석유수출국기구(OPEC) 관계자가 “석유값이 높은 것은 비단 원유값이 비싸서가 아니라 각국이 유류세를 턱없이 많이 올려 받기 때문”이라고 말한 점은 그냥 지나칠 수 없는 얘기다. 국민도 기름값의 60% 이상이 세금이란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보다 진지한 여론수렴과 차분한 설득과정이 있어야 했다.
이헌재(李憲宰)전 재정경제부장관은 부임 초에 유가급등 추세와 관련해 “국제유가 인상분을 소비자가격에 반영해 수요를 조절하겠다”고 말했다. 이 말이 그대로 지켜지진 않았지만 문제는 당시 국민이 심하게 거부감을 나타내지는 않았다는 것이다. 최근 국제유가가 가파른 등락을 거듭하는 불안정한 추이를 보이고 있는 현실은 어쩌면 정부의 에너지 세제 개편의 좋은 계기가 될 수도 있다. 에너지 소비절약을 통해 국제수지 적자를 줄이고 화석연료 의존도가 높은 생산구조를 근본적으로 바꾸는 한편 국제환경기준에 맞는 석유류 소비 규준의 도입이 불가피하다는 점을 알렸어야 했다.
또 연금불입금 소득공제제도 개선의 ‘홍보 포인트’가 적합하지 못했다. 중산층과 서민층의 세 부담을 줄여줬다는 ‘복지 강화’ 측면보다는 ‘당국과 납세자가 모두 만족하는 과세 합리성’ 측면을 부각시키는 게 낫다고 본다. 국민연금제도를 제대로 시행하고 싶은 것은 정부다. 보다 합리적으로 연금기금을 운용해서 적절한 생애소득의 시계열(Time Serial)적 배분을 보장하는 역할이 정부의 몫이다.
국민연금제도에 가장 큰 몫을 해온 사람들이 근로소득자다. 그러나 이들은 연금불입액의 한푼도 소득공제받지 못했다. 정부가 연금제도를 이용해 소득 재분배, 생애소득 재분배 기능을 수행하려면 진작에 연금불입액을 과세소득에서 빼줬어야 한다. 그래야 연금수령액에 대해 소득세 과세근거가 생기고 합리적인 과세체계가 정착된다.
등유 특소세 등 4개 세목에 부가세로 붙는 교육세가 2005년까지 연장되고 담배소비세와 경주마권세에 부가되는 교육세율을 각각 10%씩 올린다는 등의 내용은 목적세 폐지 약속을 어기겠다는 것으로, 정부가 욕먹을 각오를 하고 단행한 고육책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것도 다른 각도에서 접근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있다. 교육재정 확보에 대한 마땅한 대책이 없다는 솔직한 고백을 전제로, 담배의 국민보건정책상의 해악과 사실상 ‘도박세’인 마권세에 물리는 세금을 좀 올려 교육재정에 보태겠다는 논리를 개발했더라면 좋았을 것이다.
8월 세계은행이 세계보건기구와 공동으로 한 연구에서 나온 담배세를 10% 올리면 중저소득 국가의 900만명을 포함해 전세계 1000만명의 담배 사망자를 줄일 수 있다는 결과 등을 적절히 알렸다면 애꿎은 애연가들의 감정을 자극하지 않고도 명분을 확보했으리라고 본다.
오엽록(삼일인포마인 대표·공인회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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