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김인중/전략산업 키워야 지역이 산다

  • 입력 2000년 9월 17일 19시 31분


그 동안 수도권에 비해 IMF 경제위기의 영향을 덜 받았던 지역경제가 올 하반기 들어 심각한 위기에 처해 있다. 그러나 이러한 위기는 갑자기 발생한 것이 아니라 잠복해 있던 것이 다시 표면화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지역경제 위기의 이유로 네 가지를 들 수 있다.

첫째, 지역의 주력산업들이 경쟁력을 잃어가고 있다는 점이다. 대구의 섬유, 부산의 신발 등 영남권 산업이 이에 해당한다. 중부권은 산업생산 증가율이 수도권과 비슷하나 영남권과 호남권, 강원지역은 전반적으로 전국 평균 이하의 산업생산 증가율을 보이고 있다. 지역간 양극화가 나타나고 있으나 이는 산업간 양극화가 지역적으로 표출된 것 뿐이다.

둘째, 대전을 제외하고는 지역에서의 창업이 부진하다는 점이다. 수도권에 금융자금이 몰려있다 보니 지역에서 창업한 벤처기업이 수도권으로 이전하는 사태가 재연되고 있다. 상반기 동안 지역의 신설기업 증가율은 서울의 83%와는 큰 차이가 있지만 5∼20%로 완만한 증가추세를 보였다. 그러나 7월 들어서는 대구 -10%, 부산 -7.4%, 광주 -3% 등 수도권을 제외한 지역 전체가 아예 감소추세로 돌아섰다.

셋째, 지역의 건설업체가 과당경쟁과 수주감소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점이다. 6월까지 전국의 중소 주택업체 3460개 가운데 1.8%에 불과한 63개만 공사를 수주했을 정도이다.

넷째, 지역의 재래시장이 무너지고 있다는 점이다. 지방의 재래시장은 국내외 대형유통업체와 인터넷 쇼핑몰의 급속한 증가로 고사 위기에 처해 있다. 대형유통업체는 연말까지 170여개에 이를 예정이며 이들은 지역 진출을 가속화할 태세다.

이런 문제점들을 해결해야 한다는 것은 지역경제를 위해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지역경제 활성화의 핵심은 산업이므로 전략산업 중심의 장기적이고 내생적(內生的)인 산업발전으로 문제를 근본적으로 치유해야 한다. 그것이 우리 경제의 진정한 회생이다. 신발 섬유 석유화학 철강 등 지역의 주력산업들은 경쟁력 약화와 기술혁신 역량 부족으로 세계시장에서의 입지가 약화하고 있는 실정이다.

장기적이고 내생적인 지역산업 발전을 위해서는 핵심역량을 배양시킬 수 있는 효율적인 지역혁신체제 구축이 필요하다. 다시 말하면 지역에서 많은 기업이 생성 발전할 수 있는 혁신인프라, 즉 각종 제도와 시설을 지역실정에 맞게 만들어야 한다.

전략산업 중심의 지역혁신 체제를 구축하기 위해서는 우선 중앙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가 수립단계에서부터 지원까지 협력해야 한다. '중앙정부=지방자치단체'라는 파트너십이 성립할 때 지역은 발전할 수 있다. 전략산업별 지역혁신체제 구축에는 금융구조조정처럼 막대한 자금지원이 소요되지 않는다. 예를 들면 지역별 차별화 전략에 따라 생물산업(바이오산업) 관련 지역혁신 체제를 구축하는 데에는 해당 지역별로 300억∼500억원의 지원이면 충분하다. 산업발전에는 시기가 있다. 지식기반 전략산업 육성이 지체되면 엄청난 후회를 하게 된다.

지방자치단체는 재정여건이 어려운 만큼 중앙정부 차원에서 지역산업발전법(가칭)을 제정해 적극 지원해야 한다. 이 법에는 낙후된 지역의 절대적인 격차를 줄이기 위한 최소한의 지원조치도 포함시킬 수 있다.

최근 추진되고 있는 부산의 신발, 대구의 섬유, 경남의 기계, 광주의 광산업 등 4대 지역산업정책은 비록 처음 시작할 때에는 정치성을 배제할 수 없지만 내생적인 산업발전을 도모하는 시험대로서 그 귀추가 주목된다. 따라서 지역혁신 체제 구축이라는 시각에서 관련사업이 수립되고 집행 및 평가돼야 한다.

지역혁신 체제가 효율적으로 운용되기 위해서는 산학연관(産學硏官) 협력과 함께 다양한 지역경제주체의 참여가 중요하다. 자기만의 이익을 추구하거나 행정구역 단위의 지역이기주의에 빠지면 지식이 제대로 발현될 수 없다.

지역혁신체제가 효율적으로 운용되면 지역의 내생적 산업발전은 물론 기업의 지방이전이 촉진돼 지역간 균형발전도 앞당겨질 것으로 확신한다.

김인중(산업연구원 지역산업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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