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때 팔려가고 끌려 간 세대들이 45년 해방을 맞았다. 그러나 전승 점령국 미국은 재일한국인에 대해 이중(二重)잣대를 들이댔다. ‘당신들은 해방된 인민이다. 그러나 과거 일본국민이었으므로 적(敵)국민으로 대우한다.’ 일본의 사슬에서 벗어난 것을 축하하지만, 당분간 미군의 점령정책 편의에 따르라는 것이었다. 미군정이 끝나갈 무렵 일본정부는 재일 한국인의 일본국적을 인정하지 않기로 했다. 이로써 일제가 징병 징용 등 강제로 끌고간 사람들까지 법적지위가 뿌리 뽑혔다.
▷귀향하지 ‘못한’ 재일동포들의 부초(浮草)같은 삶은 오늘날까지 이어져 왔다. 세금은 일본인과 꼭같이 내면서도 투표도 출마도 제한 당하는 ‘외국인’이다. 취직 진학 영업 대출 등에서 시린 차별대우를 견뎌야 했다. 거기에 또 조국의 분단과 대치가 그들의 국적을 갈라 놓고 동포사회를 양분했다. 민단(재일한국거류민단)과 조총련(재일조선인총연합회)의 대립이 그것이다. 냉전이 피크를 이루던 시기에는 분단 조국에서보다 더 첨예하게 맞서 소모전을 벌였다.
▷이제 6·15남북공동선언과 함께 일본의 민단(46만여명)과 조총련(17만여명)도 화해무드다. 조총련계 기업인을 비롯한 동포들은 75년이래 성묘 관광차 벌써 4만8000여명이 다녀갔다. 이제야 오는 이들은 저마다 사연이 다르다. 정치관 역사관이 다르거나 조총련간부를 지낸 이도 있다. ‘세월의 장난으로 이제야 왔다’는 한 유행가의 절규가 떠오른다. 다시는 이민족 지배, 분단 같은 ‘장난’에 휘말리지 말자고 다짐해 보자. 눈물과 고통은 지난 백년으로도 넘치도록 충분하기에.
<김충식논설위원>seeschem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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