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문화에 대한 지식이 전혀 없었던 나에게는 모든 것이 충격으로 다가올 수밖에 없었다. 내가 사는 서울 잠실의 먼지와 소음, 개성도 없이 획일적으로 지어진 고층 아파트들, 차갑게만 보이는 아파트 실내의 조명등 불빛, 차나 커피가 아니라 콜라나 사이다를 선호하는 풍습, 방문했던 가정마다 계속 켜져 있는 텔레비전, 텔레비전 앞에 홀로 남겨진 어린이들 등이 내가 경험했던 충격적인 현상들이었다. 그러나 한국의 전통적 생활양식과 문화유적을 만나고 이해하기 시작하면서 충격은 서서히 극복돼갔다.
한국의 전통 한옥은 유럽의 전통 가옥과 아주 다르다. 그렇지만 인간을 보호하고 인간에게 휴식과 안식을 제공하는 기능을 한옥은 나름대로의 방식으로 하고 있다. 경사진 언덕 위에 한줄로 정돈된 한옥들, 낮지만 넓은 기와지붕을 이고 있는 한옥들, 나무로 지어져 약하지만 따뜻하게 보이는 한옥들, 한옥이 주변의 자연환경과 조화를 이루어 자연과 하나가 되는 모습은 거의 예술적이라고 할 만큼 아름답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이 아름다운 한옥들은 거의 사라졌다. 점점 더 많은 아파트가 들어서고 사람들은 차가운 콘크리트 문화에 둘러싸여 있다. 어린이들은 과거의 전통미를 경험할 기회를 잃어버리고 있다. 한옥을 한두 채 지어놓은 민속촌이나 간혹 방영되는 텔레비전 역사극으로 전통미를 대체할 수는 없다.
옛날의 한국은 분명히 목조건축의 나라였다. 사찰, 궁전, 귀족과 서민들의 가옥이 모두 나무로 지어졌다. 유럽에는 한국처럼 고도로 발달한 목조건축의 역사가 없기 때문에 한국의 전통 건축물들, 특히 자연환경과 하나가 된 가옥들은 유럽인들에게 진기한 현상일 수밖에 없다. 그리스의 신전은 돌로 지어졌다는 차이뿐 한국의 전통 건축물과 공통점이 많다. 그리스의 문화와 역사를 잘 알고 있는 나에게 한국의 사찰 궁전 가옥들은 낯설게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그 건물들의 자연과의 조화에서 풍겨 나오는 미적 매력에 감탄할 뿐이다. 한옥이 풍기는 따뜻한 기운, 그 속에서 피어나는 인간의 생동성, 자연의 품에 안긴 한옥은 진정으로 아름답다.
18세기 이래로 유럽에는 극동아시아는 낯설고 비밀에 싸여 있으며 아름답기도 하지만 무섭기도 해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세계라는 생각이 지배했다. 그러나 얼마 전 신문에서 일본에 살면서 일본학을 전공하는 한 독일 여성이 반대 주장을 편 글을 읽었다. 그녀에 따르면 일본은 독일과 다를 바 없으며 비밀에 싸여 있거나 이해 불가능한 나라가 아니다. 단지 사회구조와 관습이 다르기 때문에 바로 이 다른 점을 연구해야 일본에 대한 이해를 가로막는 벽을 무너뜨릴 수 있다는 주장이었다.
유럽인들이 극동아시아에 대해 품어왔던 이해 불가능성과 한 독일 여성이 주장하는 이해 가능성. 이 문제는 나에게는 실제생활과 관련된 실존의 문제가 된다. 한국의 사회구조 관습 가치관은 분명히 유럽과 다르다. 남녀의 구별, 여자보다 남자를 선호하고 우대하는 사상, 공식석상에서 자유토론과 자기주장을 억제하려는 성향, 집보다는 옷에 더 가치를 두려는 생각 등은 이해하기 어렵다.
그렇지만 똑같은 인간이라고 생각하면 이해 불가능성이 이해 가능성으로 역전된다. 한국문화와 유럽문화의 차이점을 인정하고 이해하려는 노력을 하는 것이 해답이라고 생각한다. 이해 불가능성과 이해 가능성이 하나 속에 들어 있는 역설(逆說), 이 역설은 내가 한국 문화에 대해 이해하려는 노력을 지속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름가르트 유군더트 교수는 1941년 독일 베를린에서 태어나 튀빙겐대 뮌헨대 하이델베르크대와 그리스 아테네대 등에서 희랍어 라틴어 인도게르만어 중세독일어 고고학 등을 공부하고 중등학교와 대학에서 언어를 가르쳤다. 독일의 시인 소설가인 헤르만 헤세의 이종사촌 손녀이기도 한 유군더트 교수는 한국인 유형식씨와 결혼, 현재 부부가 함께 중앙대 안성캠퍼스 독어과 교수로 근무하고 있다.
이름가르트 유군더트(중앙대교수·독일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