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는 정부가 경제구조조정의 방향은 잘 잡았으나 다음과 같은 문제점들을 잘못 풀어나가면 제2의 경제위기를 맞을 수도 있기 때문에 정책의 우선순위 선정에 신중해야 하고 선정된 정책의 집행 과정에서 초래될 부작용에 대한 예방조치를 충분히 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첫째, 정부가 지나치게 서두른 나머지 성급하게 올해 안으로 금융 및 기업의 구조개혁을 마무리짓겠다고 발표하는가 하면 대우자동차 매각도 선인수 후청산 방침을 먼저 밝혀 말이 너무 앞서가는 바람에 결국 대우차와 한보의 매각협상 실패로 정부에 대한 신뢰도가 크게 떨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둘째, 정부가 △내년 중 2000만원 한도의 예금부분보장제 △외환관리의 완전자유화 △금융소득에 대한 종합과세 △대북경제지원 강화 등 주요 경제정책을 동시다발적으로 실시하겠다고 발표했는데 이렇게 되면 제2의 경제위기가 올 가능성이 매우 높아진다는 것이다.
예금부분보장제를 강행할 경우 비교적 경영상태가 좋은 은행으로 예금이 몰릴 것이 뻔한데 그렇게 되면 불량채권이 많은 4, 5개의 시중은행과 일부 상호신용금고, 종금사, 투자신탁사 등의 파탄과 금융공황이 일어날 가능성이 높다. 또 해외여행경비와 해외송금의 한도를 폐지하고 해외에서의 외화예금을 허용하는 외환자유화와 동시에 금융소득종합과세가 실시되면 내외국인에 의한 외화도피가 급증할 가능성이 높다.
인도네시아 중앙은행이 경제위기 극복책으로 129조루피아(미화 약 300억달러)를 자국의 120개 은행에 제공했을 때 이 돈들이 달러로 교환돼 싱가포르은행으로 이동했던 사실을 정부는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한다.
그렇게 되면 환율의 평가절하 가속화, 정부의 외환보유고 감소, 증시 폭락, 외국인 직접투자 격감 및 철수, 외국인자금의 대량 유출 등이 일어날 수 있다. 여기에다 대북 경제지원을 하기 시작하면 국가재정 부담이 늘어나고 또 북한 진출 기업도 자금부담이 커져 국내기업이 더욱더 부실화될 가능성이 크다.
최근 월스트리트저널지는 한국이 국내의 금융 및 기업의 구조개혁을 서둘러야 할 시점에 대북 경제지원을 하게 되면 다음 세가지 문제에 직면하게 될 것이라고 경고한 바 있다.
첫째, 재벌들의 대북투자나 사업전개는 추진중인 구조개혁을 저해하거나 중단시킬 위험성이 있다는 것이다. 이 기사는 한 예로 현대아산이 이미 북한에 4억달러 이상을 투자했지만 어느 한 프로젝트도 이익이 나는 게 없어 현대의 유동성 위기와 ‘시장의 신뢰 상실’을 초래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둘째는 북한의 저렴한 노동력에 대한 매력 때문에 한국기업의 국제경쟁력 강화를 위한 생산성 향상 노력이 약화될 위험이 있다는 것이고, 셋째는 북한의 사회간접자본 건설 프로젝트의 경우 한국정부로 하여금 이에 참여하는 한국기업들에 공적자금으로 보조금을 제공하게 만들 가능성이 매우 크다는 점이다.
이렇게 되면 과거의 경제위기 원인들이 재현될 것이다. 이미 일부 대기업들의 경우 과거의 잘못을 반복하는 징조를 분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현대아산은 개성 근처에 10억달러 규모의 공업단지와 금강산 근처의 공항 건설을 발표했지만 유동성 부족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현대가 과연 자금조달을 할 수 있을지 극히 의문시된다.
비록 북한 프로젝트가 단기적 성공을 거둔다고 하더라도 장기적으로 이것은 한국경제의 전반적인 건전성을 희생으로 해 이뤄질 것이기 때문에 97년 경제위기의 원인들을 또다시 만들어 내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다. 이 같은 문제들의 해결 없이 이뤄지는 성급한 대북 경제지원은 한국경제에 위기를 초래할 가능성이 크다.
정부는 인도네시아가 겪었던 막대한 외화도피와 같은 유사한 사태를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서라도 부분예금보장제와 외환거래의 완전자유화, 금융소득종합과세, 대대적인 대북경제지원 등을 동시다발적으로 진행시키지 말아야 하며 정책 선택의 우선순위 결정과 실시 시기 선택에 지혜를 보여줘야 한다.
김동기 (고려대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