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名士칼럼]이어령/가상현실의 新世界가 열린다

  • 입력 2000년 10월 19일 18시 47분


산업사회와 정보사회가 얼마나 다른 지 3D란 말만 봐도 알 수 있다. 3D는 더럽고, 위험하고, 어려운(Dirty, Dangerous, Difficult) 일을 나타내는 영어 단어의 세 머리글자를 따서 만든 말이다.

그래서 살기가 편해진 요즘 젊은이들은 3D란 말만 들어도 천리 밖으로 달아난다. 건축 공사장이나 시골 논밭에서 젊은이의 모습을 찾아볼 수 없게 된 것도 모두가 그러한 시대의 흐름 때문이다.

그런데 정보시대의 3D는 다르다. 3차원을 의미하는 영어의 이 약자는 컴퓨터 그래픽이나 영상물의 입체성을 일컫는 정보기술(IT)의 총아이다. 글자는 조금도 다름없는 3D이지만 정보시대의 그것은 정반대로 젊은이들의 마음을 사로잡고 열광 속으로 몰아넣는다. 컴퓨터 게임이 그렇고, 입체영화와 입체음향이 그렇고, 광고나 인터넷 홈페이지까지도 3D가 등장한다.

그 3D기술 중에서도 괄목할 만한 것이 ‘버추얼 리얼리티(VR)’란 것이다. 그것을 ‘가상현실’이라고 번역하는 바람에 대부분의 사람이 현실과 동떨어진 것으로 생각하기 쉽지만 실제로는 현실 이상의 현실을 만들어 내는 기술이다. 원래 버추얼은 가상이란 뜻보다는 실질적인 것, 진짜와 다름없는 것을 의미할 때 쓰는 말이다.

그래서 오해가 생기지 않게 가상현실이란 말 대신에 ‘인공현실’ 또는 ‘대리현실’이라고 부르는 사람도 있다.

입체영화처럼 단순히 보고 느끼는 것이 아니다. 자신이 직접 그 영상 속으로 들어가서 현실과 다름없이 행위를 할 수 있는 것이 ‘버추얼 리얼리티’이다. 전후 좌우와 상하로 움직이면서 대상물을 관찰할 수도 있고 움직이게 할 수도 있다. 특수 장갑을 끼면 실체처럼 만질 수도 있다. 그러니까 그 용도는 멀티미디어보다 훨씬 앞선 것으로 산업분야를 비롯해 의학치료 교육 훈련 등 이루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분야에 걸쳐 있다.

더구나 이번 경주 문화엑스포에서 보여준 것처럼 문화재 보존 차원에서도 놀라운 효과가 있다는 점을 보여주고 있다.

지금까지는 물리 화학 그리고 생물학적인 처리를 통해서 문화재를 유지 보수해왔지만 그것을 디지털화하여 VR기술로 재생하면 현실 그대로 영구히 남길 수가 있다. 수천, 수만㎞를 달려온 사람들이 바로 몇m 앞에 석굴암을 두고도 그 안에 들어가 볼 수 없는 안타까움이 사라지게 되는 것이다. 가장 아름답다는 11면 관음보살도 본존불에 가려서 밖에서는 영원히 바라볼 수가 없다.

하지만 석굴암을 실물과 똑같은 버추얼 리얼리티로 만들어 놓으면 어떤 비바람도 그것을 멸할 수가 없게 된다. 천년 뒤의 사람들도 지금 그 안에 들어가 보는 것과 똑같은 감각과 똑같은 감동을 체험할 수가 있다.

의자에 가만히 앉아서 남산에 올라가 향기로운 솔 냄새를 맡고 가파른 암벽에 새겨진 조각들을 손가락으로 감상한다. 그리고 천년 전에 사라진 서라벌 최대의 금천교를 밟고 지나가면 안압지의 연꽃과 나비 떼가 일제히 눈썹 위로 다가온다. 그리고 황룡사 9층목탑과 첨성대에 올라 별들을 바라보면서 서라벌 숨결 속으로 들어간다.

이 모든 것이 순수한 한국의 기술진이 만든 버추얼 리얼리티의 놀라운 신세계이다. 아직은 첫걸음에 지나지 않지만 라이트 형제가 만든 비행기도 처음에는 자동차보다도 느린 시속 48㎞로 날지 않았는가.

시작이 반이다. 정보기술과 다양한 장치로 우리는 사라진 문화를 복원하고, 있는 것을 그대로 보존할 수가 있다. 자연환경에서보다도 더 많은 것을 바로 이 버추얼 리얼리티 속에서 창조해 내고 조종할 수가 있기때문이다. 산업사회의 3D가 정보사회의 3D로 바뀐다.

사이버의 꿈(Dream) 만들기와 방향(Direction) 찾기, 그리고 그것을 디지털(Digital)기술로 실현하는 정보시대의 새로운 3D가 지금 젊은이들 사이에서 실현되고 있는 것이다. 아톰으로 된 물질은 나눌수록 적어지지만 비트로 된 정보와 그 감동은 나눌수록 커진다. 여기에 우리의 미래가 있다.

이어령(이화여대 석좌교수·새천년준비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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