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인수합병(M&A)의 귀재’ ‘미다스의 손’. 사람들은 그를 이렇게 불렀다. 고려대 경영학과(86학번)를 졸업한 95년초 기업 인수합병 중개업에 뛰어들었다. 96년말 선배로부터 빌린 3000만원으로 M&A회사 설립, 불과 3년여만에 수백억원대 재산 형성…. 이력을 보면 별명이 과장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사세를 본격적으로 확장한 것은 98년초 정보통신 분야에 특화된 M&A사업을 추진하면서부터. 경제위기로 쓰러져가던 인터넷업체들에 집중적으로 자금을 지원하고 M&A를 중개해준 전략이 맞아떨어졌다.
그러던 중 98년 8월 한국디지탈라인의 M&A중개를 맡았다. M&A가 여의치 않자 직접 지분을 인수, 대주주가 된 그는 코스닥 활황을 타고 회사 주가가 천정부지로 치솟은 덕택에 막대한 부를 단숨에 쌓았다.
▽금융인으로 변신〓그는 작년 1월 웹인터내셔날(현 한국디지탈라인)의 윤석민 사장으로부터 회사지분 30.89%를 싼값에 인수했다. 이후 전환사채(CB) 30억원을 발행해 KDL창업투자 등 각종 인터넷 및 정보통신 벤처기업을 인수하며 업계에 급속히 두각을 드러냈다. 디지탈라인 주가는 코스닥활황으로 최고 4만6000원(액면가 500원)까지 치솟아 떼돈을 벌었다.
올 6월에는 새한그룹이 워크아웃(기업개선작업)으로 어려워지자 ㈜새한이 갖고 있던 디지탈임팩트 지분 13%를 인수해 ‘한국판 손정의’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다.
이렇게 벤처투자로 돈을 번 정씨는 작년 5월 대신신용금고를, 10월엔 태평양그룹으로부터 동방상호신용금고를 인수해 금융업에 진출했다.
▽불법의 시작〓그러나 정씨는 진정한 금융인이 아니었다. 법규상 상호신용금고는 출자자 대출이 금지돼 있으나 이모씨 등을 내세워 105억원을 불법대출받았다. 동방금고는 또 직원들과 투자조합이 갖고 있는 평창정보통신 주식 20만4689주를 시세(주당 3700원)보다 3배가량 비싼 1만1000원에 매입하는 형식으로 회사자금 15억원을 빼돌렸다. 정씨는 이와 함께 대신금고 소유의 평창정보통신 주식 33만주(매입가 36억원)를 무단 인출했다. 회사재산과 개인재산을 구분하지 못한 행위였다. 불법인출한 주식은 현재 사채시장에 담보로 맡겨져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왜 돈이 필요했나〓증시 붕괴와 무리한 사업확장 때문이었다. 정씨는 이미 대규모 지분을 가지고 있던 평창정보통신의 경영권안정을 위해 주식 50만주를 주당 1만5000원에 공개매수한다고 8월 선언했다(총 인수대금 75억원). 당시 장외주가는 9000원대로 쉬 이해하기 힘든 일.
정씨는 소액주주로부터 50만주를 일단 인수했으나 자금사정이 어려워지면서 대금지급을 일방적으로 연기했다. 이후 10월20일, 11월20일 두 번에 걸쳐 50%씩 매입대금을 지급하기로 했으나 1차 시한을 지키지 못했고 대신 이 주식을 담보로 사채시장에서 급전을 끌어다 쓴 것으로 밝혀졌다. 장외시장 관계자는 “정씨가 동방상호신용금고 대출금을 공개매수 자금으로 사용하고 차입금은 디지털임팩트와 한국디지탈라인 주식을 팔아 갚으려고 했던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한국의 손정의’를 꿈꾸던 그는 결국 ‘무늬만 젊은’ 불법사업가로 전락하고 만 것이다.
<김두영·금동근기자>nirvana1@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