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처드 핼로란 칼럼]‘클린턴 방북’ 위험한 시도

  • 입력 2000년 10월 24일 18시 36분


한반도를 둘러싼 기류가 급변하고 있다. 남북한은 물론 미국에서도 오랜 대립관계가 종식될 수도 있다며 흥분하는 분위기가 역력하다. 하지만 지난 반세기 동안 북한이 보여준 행동을 돌이켜볼 때 지나친 안도는 금물이다. 빌 클린턴 대통령이 북한을 방문하게 된다면 더욱 그렇다.

누구나 알고 있듯이 북한과의 극적인 관계개선은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이 평양을 방문해 김정일(金正日)국방위원장을 만나면서 시작됐다. 이후 남북한 장관급 회담과 주룽지(朱鎔基)중국 총리의 방한, 아시아유럽정상회의(ASEM)에서의 한반도 평화 촉구 선언 등이 이어졌다.

김대통령의 노벨 평화상 수상은 김대통령 개인만이 아니라 한국 국민 전체의 영예이다. 필자는 김대통령을 30년 가까이 지켜보았는데 그는 진정으로 조국을 사랑하는 민주투사로 노벨 평화상이 결코 과분하지 않는 지도자이다.

슬프게도 바로 여기에서 회의론이 고개를 들기 시작한다. 김정일 위원장은 남북정상회담이 성사된 지 5개월도 안됐는데 김대통령에게 축하의 말 한마디하지 않았다. 정부의 철저한 통제를 받는 북한의 언론은 김대통령의 노벨상 수상 사실조차 보도하지 않았다.

한동안 중단됐던 북한의 신랄한 선동 행위도 재개됐다. 최근 북한의 조선중앙통신사는 17년 전 미얀마 폭탄테러사건의 희생자에 대한 추모식을 가졌다는 이유로 한국을 통렬히 비난했다. 조선중앙통신은 “이는 남한 당국이 남북공동선언을 이행할 의지도 없고 북한과 미국의 관계 개선을 원하지도 않는다는 것을 입증해준다”고 보도했다.

결국 관계개선에 대한 흥분이 가시면서 실질적으로 변한 것은 아무 것도 없다는 것이 명백해지고 있다. 북한을 옹호하는 재일교포인 김명철씨는 저서에서 “김정일 위원장은 5년 내에 한반도의 통일을 성취할 것”이라고 적고 있다.

이는 “미국 냉전정책의 비정상적인 산유물인 한국이 붕괴된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그는 설명한다. 그는 “미국이 엄청난 ‘지옥불’에 빠질 위험을 감수하지 않는다면 이는 분명 실현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윌리엄 코언 미국 국방장관은 최근 “북한은 어떤 식으로도 군사력을 감축하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북한이 과거 어느 때보다도 군사훈련의 강도를 높이고 있으며 군사적 행동에 나설 준비태세를 늦추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북한은 중화기를 포함한 군사력을 남쪽으로 전진배치해 왔다고 그는 덧붙였다.

한국과 미국은 그동안 공격적인 협상전술을 펴온 북한이 또 다른 터무니없는 요구를 해오는 것은 아닌지 예의주시하고 있다.

북한은 1994년 핵무기개발 위협을 이용해 한국과 미국으로부터 핵 경수로를 지원받았고 1990년대말 미사일 위협을 통해 한국 미국 일본으로부터 식량 등 대규모 지원을 받아냈다. 이번에는 생화학무기를 이용할 가능성이 높다.

이같은 상황에서 클린턴 대통령의 평양 방문은 매우 위험한 일이다. 세계 최강대국 지도자가 북한을 방문한다면 김정일 위원장에게 예측 불가능한 힘을 실어줄 수 있다. 북한인과 다른 아시아 국가도 그런 인상을 받게 될 수도 있다.

클린턴 대통령은 재임 8년 동안 국제문제에 대해 큰 관심을 보이지도 않았고 뛰어난 외교술을 보여주지도 못했다. 중국을 방문해서는 대만에 대한 중국의 권리 요구를 거의 다 들어주었고 명예를 걸고 협상을 성사시키려 했던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은 다시 전쟁의 화염에 휩싸였다.

알려진 바로는 일부 공산국가를 제외하고 외국 방문 경험이 거의 없는 김정일 위원장도 최고위급 외교에 능숙하지 않을뿐더러 서방이나 미국에 대해 거의 알지 못한다.

결론적으로 말해 클린턴 대통령과 김정일 위원장이 같은 탁자에 마주 앉는다는 것은 양쪽 모두에게 오판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

클린턴 대통령으로서는 내년 1월20일 퇴임을 앞둔 상황이라 무엇인가 화려한 성과를 내고 싶은 욕심에서 김정일 위원장이 제시하는 협상을 쉽게 받아들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런 협상이 한국에도, 미국에도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라는 판단은 결코 성급한 것이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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