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계 입문 1년만에 이 ‘마의 숫자’를 두차례나 돌파한 사람이 있다. 영화배급업체의 선두주자로 올라선 CJ엔터테인먼트의 이강복 대표이사(48)다. CJ는 올해 여름 미국 드림웍스의 ‘글래디에이터’로 123만9000여명의 관객을 끌었고 가을에는 30억원의 제작비를 들인 ‘공동경비구역 JSA’로 26일 200만관객을 돌파한다.
올 한해 한국영화판을 평정하다시피 한 그는 과연 영화도사일까. 그는 지난해 8월 CJ의 조타수로 오기 전까지 20여년간 제일제당에서 설탕과 곡물의 국제가격만 생각하고 산 영화의 문외한이었다.
가장 인상에 남는 영화가 뉴욕행 비행기안에서 눈물을 펑펑 흘리며 본 ‘조이럭 클럽’이라고 말하는 이 남자에게 영화는 뭘까. 먼저 설탕과 영화의 공통점을 뭐라 생각하느냐는 말로 운을 땠다.
“리스크가 크다는 점이죠. 설탕은 불확실한 작황과 국제적 투기세력 때문에 가격예측이 무척 어렵습니다. 영화도 마찬가지로 흥행성적을 예측하기가 무척 어렵습니다. ‘JSA’도 이렇게 대박을 터뜨릴 줄은 몰랐으니까요. 반면에 그래서 짜릿한 스릴이 있다는 점도 닮았습니다.”
이번엔 차이점을 물어봤다.
“규모가 다르죠. 제일제당 원료사업부장 시절에는 한해 6000억원의 돈을 굴렸어요.올해 저희가 한국영화에 투자한 돈이 최대로 많다지만 200억원입니다. 설탕업계에선 200억원쯤 잃는 것은 아무 일이 아니에요. 하지만 대중적 영향력에서는 영화의 위력을 설탕이 따라갈 수 없습니다.”
81년 톤당 1000달러하던 원당가격이 85년 50달러로까지 급락하는 시기 뉴욕의 선물시장에서 버텨낸 경험 때문일까. 그는 왠만한 규모의 리스크에 대해선 달관한 사람처럼 보였다. 요즘같은 불황기에도 돈을 잃지않는다는 그의 재테크를 캐봤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수익률에 집착하는데 정작 중요한 것은 리스크의 분산입니다. 또 주식이든 포커든 가장 중요한 것은 셀링포인트를 결정하는 것입니다. 아무리 좋은 카드가 들어와도 언제 내놓을 것인를 결정할 줄 알아야 돈을 땁니다.”
그가 영화계에 뛰어들어 제일 먼저 파악한 것도 셀링포인트였다.
“결론은 배급과 극장사업은 돈이 되지만 한국영화론 이익을 낼 수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국내시장만으로는 수십억을 쏟아붇는 블록버스터의 수익을 건질 수가 없으니까요. 하지만 영화사업을 하는 이상 제작엔 투자안하고 외화 배급만 할 수는 없었죠.”
그래서 그가 생각한 것이 파이의 규모를 키우는 방안. 당시 유료관객 5000여만명인 한국영화시장을 1억명까지 확대하고 해외배급망을 확보하는 방법으로 난관을 타개하자는 것이었다. 이를 위해 당시 25개였던 멀티플렉스극장 CGV의 스크린수를 2004년까지 150개로 확대하고 매년 200억원가량을 한국영화 제작에 투자하기로 했다. 또 올 9월에는 일본 배급사인 시네콰논과 1000만달러짜리 컨소시엄을 구축, 한국배급사로서는 처음 일본 직배의 길을 열었다.
CJ 영화 중 11월에는 41억원을 투자한 강제규필름의 ‘단적비연수’, 내년 봄에는 50억원을 투자한 싸이더스의 ‘무사’가 속속 대기중이다.
한국영화에 대한 그의 투자는 엄밀한 의미에서는 펌프물을 끌어오기 위해 붓는 마중물에 불과한지 모른다. 올해 국내 영화관객은 10%나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CJ가 영화제작에서 얻은 예상수익은 60억원. 극장예상수익은 120억원으로 두배다.
그는 궁극적 목표가 “5년안에 제작과 배급, 상영이 결합된 트라이앵글 위에 할리우드식 스튜디오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이라며 “시스템이 사람을 대신할 때 영화계를 떠나겠다”고 말했다.
<권재현기자>confett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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