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신은 사람을 미혹시키는 믿음이라는 뜻으로 세상을 어지럽히고 사람들을 속인다는‘혹세무민(惑世誣民)’의 신앙을 줄여 부르는 부정적인 말이다. 하지만 이 미신으로 남들이 손해보지 않고 자기는 세상을 살아가는데 조금이라도 도움을 얻는다면 어떨게 될까?
새벽에 여자가 자기 앞을 가로 질러가거나 하루의 첫 손님이 여자면 재수가 없다고 믿는 남자가 있다고 하자. 그는 우연히 자기 상점에 첫 손님으로 들른 여자에게 눈쌀을 찌푸린다든지 불평을 늘어 놓을 것이다. 여자는 불쾌할 것이고, 가부장적인 사회에서 사는 비애와 분노를 느낄 것이다. 그의 생각과 행동은 죄없는 여자에게 폭력을 휘두른 것이 되며, 남자와 여자가 더불어 살아야 하는 세상을 어지럽힌 셈이 된다. 이 때, 그는 ‘미신적‘인 태도를 가지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런데 그는 어째서 이런 ‘미신‘에 빠지게 되었을까?
장차 다가올 일을 미리 아는 사람은 없다. 앞으로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르기에 사람들은 항상 불안감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 불안에 시달리며 자신없어 하는 태도보다 틀림없이 잘 될 것이라고 확신하며 일을 처리하는 것이 아무래도 살아가는데 효과적일 것이다. 남녀가 내외하며 집밖과 안에 각각 활동영역을 정하고 있던 사회에서 여자가 새벽에 돌아다닌다는 것은 매우 드문 일임에 틀림없다. 만약 그런 드문 경우를 재수없는 때라고 믿는다면, 나머지 거의 대부분의 경우는 재수가 나쁘지 않은 때가 된다. 그래서 많은 이들이 “오늘은 (행운을) 기대해도 되겠다”고 낙관하면서 하루를 보낼 수 있게 된다.
그런데 문제는 시대가 바뀌어 여성들의 사회참여가 활발해진 지금까지 이런 태도를 견지하는 이들이 있다는 점에있다. 만약 지금도 이런 태도를 계속 고집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그는 스스로를 학대하는 자일 것이다. 날이면 날마다 재수없고 동티나는 날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자기만 재수없는 날이 아니라, 죄없는 여자들에게도 재수없는 날이 되니 그야말로 그의 믿음은 영락없는 미신이다.
하지만 하루 운세를 보며 오늘의 삶을 요모조모 생각하는 나의 습관은 미신이 아니다. 남에게 손해를 입히는 일이 전혀 없을 뿐만 아니라, 세상을 어지럽히기는 커녕, 더불어 세상살기에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장석만(한국종교연구회 연구원·종교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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