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사칼럼]박영식/정보화시대 대학의 위기

  • 입력 2000년 10월 26일 18시 58분


정보화의 물결이 거세게 일고 있다. 이제 정보화는 거역할 수 없는 흐름으로 보인다. 산업혁명 이후 200년만에 다시 겪는 대전환이 아닐 수 없다. 산업혁명이 전기라는 새로운 동력에 의한 혁명이라면 정보화는 시간과 공간을 극복한 혁명이라고 할 수 있다.

인간은 오랫동안 시간과 공간에 의해 제한돼 왔다. 독일의 철학자 칸트도 시간과 공간을 경험적 사물의 형식이라고 했다. 인간은 어떻게 시간을 줄이고 어떻게 공간을 넓힐까로 고심했다. 인류 문명사는 바로 시간 줄이기와 공간 넓히기의 성과요, 그 흔적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정보화의 총아인 컴퓨터에 의해 시간과 공간의 제한성이 극복되고 있다. 인터넷이 정보를 거리를 초월하여 동시적으로 전달하고, 인간에게 무한한 가상공간을 제공하고 있기 때문이다. 정보혁명을 시간과 공간을 극복한 혁명이라고 말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시공 벽 무너져 존립기반 흔들▼

시간과 공간의 제한성을 극복한 정보혁명은 사람들 사이의 담을 허물고, 인간의 구획된 삶을 파괴하고 있다. 정보화가 인간의 삶을 물리적 공간에서 가상공간으로 옮기고 있으며, 인간의 삶이 날로 가상공간에 의존되면서 구획된 삶을 유지할 수 없게 되고 있는 것이다. 전화가 인간을 물리적 접촉보다 가상접촉에 의존시킨 지 오래이고, 영화와 TV라는 영상공간과 인터넷이라는 정보공간이 인간의 삶을 가상공간으로 옮기면서 인간의 구획된 삶이 급속도로 위축되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정보화가 진척되면 대학에 어떤 변화가 초래될 것인가. 대학은 학문의 선진성과 대학의 경쟁력을 위해 정보화를 선도해야 할 것이요, 따라서 정보화의 영향을 가장 앞서 받게 될 것이다. 대학의 역사는 800년이 넘는다. 지난 800년 동안 수적으로 증가하고 양적으로 확대되면서 대학은 불멸의 성채인 양 그 위용을 과시해 왔다. 그러나 이제 정보화에 의해 대학도 크게 도전받게 되었다. 물리적 성채로서의 대학, 구획된 단위로서의 대학이 허물어질 위기에 직면한 것이다.

대학에서의 수강신청이 컴퓨터에 의해 이뤄진 지는 이미 오래 되었고, 이제는 학교가 아닌 집에서 수강신청을 할 수 있게 되었다. 대학의 강의실이 멀티미디어 강의실로 바뀌면서 강의 방식도 구두식에서 멀티미디어 장비를 활용하는 매체식으로 바뀌고 있다. 일부 강의는 이미 인터넷을 통한 가상강의로 진행되고 있다. 한마디로 재택(在宅)수강이 가능해지고 있는 것이다. 언제 어디서나 자기가 원하는 시간과 장소에서 강의를 들을 수 있게 된 것이다. 이것은 바로 물리적 공간을 필요로 하지 않는 대학으로의 변신이요, 물리적으로 구획된 대학의 존립을 위협하는 일이 아닐 수 없다.

앞으로 정보화가 진행되어 가상대학이 궤도에 오르면, 대학에서는 학생모집을 제한할 필요가 없게 될 것이다. 물리적 제한성에서 벗어난 대학에서 일정 수의 모집정원이란 의미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되면, 예를 들어 S대학이 학생모집을 5000명으로 제한할 이유가 없을 것이요, 그 대학이 70만명을 모집하게 되면 한국에 대학은 S대학 하나만 남게 될 것이고, 모든 학생들은 S대학 학생이 될 것이다. 정보화는 대학의 독점화 현상을 수반하게 되는 것이다.

▼1대 1 교육등 틈새를 파야▼

그러나 대학의 독점화는 어떤 나라에 국한되지 않는 세계적 현상이 될 것이다. 정보화는 언어의 전환을 가능하게 할 것이고, 영어나 프랑스어를 한국어로 전환할 수 있게 될 것이다. 그렇게 되면 한국에서 미국 하버드대나 프랑스 파리대의 강의를 들을 수 있게 되고, 그 대학의 학생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그 때는 논리적으로 세계에 가장 우수한 하나의 대학만 남게 될 것이다. 이것은 결코 가상도 아니고 요원한 미래의 일도 아니다.

대학의 존립을 위협하는 이런 정보화 추세에 대학은 어떻게 대응해야 할 것인가. 오늘과 같은 인간적 접촉이 없는 양의 교육으로는 안된다는 것이다. 대학이 정보화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정보화의 틈새를 파고들어야 하고 정보화가 미치지 못하는 방식을 택해야 한다. 교수나 학생이 1 대 1로 접촉하는 교육, 학생과 교수 사이에 인격적 교감이 있고, 지성적 감성적 대화가 가능한 그런 작은 대학과 질의 교육으로 거듭나야 한다. 교육의 원형을 회복하는 데서 대학 존립의 기반을 찾아야 할 것이다.

박영식(광운대 총장·학술원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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