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론 오대산에는 월정사, 상원사라는 큰 절이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거기까지만 왔다 간다. 기념사진 찍고 단풍 구경하고 낯선 절간을 기웃거리다가 쓰레기를 남기고 떠나간다. 하긴 인간이란 존재는 누구라도 가벼움에서 자유롭지 못한 부분이 있다. 세상 밖으로 소풍 나와서 웃고 울고 떠들다가 추억을 몇 장 남기고 사라지는 그런 현실을 부인할 수는 없다. 그래도 사람들이 북적이는 공간에서 몇 걸음만 벗어나 보라. 가을 산길을 홀로 걸어 보라. 내가 누구인지 내 삶이 왜 헝클어져 있는지 보이기 시작한다.
▼나의 정체 나의 삶이 보여▼
구불구불한 산길은 잃어버린 탯줄을 연상시킨다. 태어나기 전에는 생명줄이었지만 탄생 이후는 잘라 버리는 것이 탯줄이다. 모태로부터 분리된 아픔과 외로움이 어찌 저 깊은 기억의 밑바닥에 남아 있지 않을까. 산길을 걷다 보면 심연의 고독이 산죽(山竹)의 이파리처럼 살갗을 찌를 듯 다가온다. 언젠가 달빛이 얹힌 산죽을 본 적이 있다. 산죽은 무서리처럼 차갑게 빛을 발하고 있었다. 아직도 그 정경이 생생하다. 우리 의식도 그렇게 빛을 내며 깨어 있어야 하지 않을까.
낙엽을 떨구고 있는 나무들이 길 떠나는 수행자 같다. 나도 무언가를 미련 없이 떨구고 싶다. 돌이켜보면 얼마나 많은 욕심의 나뭇잎들을 달고 살았던가. 사람을 취하게 하는 것은 술만이 아니다. 욕심에도 사람을 흥분하게 만드는 알코올 성분이 있다. 감성과 이성, 주의와 사상, 통념과 관념 등도 집착하면 사람을 취하게 한다. 도취하면 마음은 닫혀지고 지혜는 멀어진다. 그러나 가을 산길에서는 자신의 헛된 나뭇잎들이 하나 둘 떨어져 나간다. 찬물을 들이켠 듯 자아 도취와 마취 상태에서 차츰 깨어난다. 한 계단 한 계단 닦아간다는 점수(漸修)란 이런 경계일 것이다. 깨달음이란 의미가 깨어남과 동의어란 생각이 든다.
차가운 물소리와 바람소리가 들린다. 소리들은 소쇄하여 흔적을 남기지 않는다. 지켜야 할 제 자리에서 무심히 소리낼 뿐 치사한 인간처럼 한 자리 차지하려고 서로 밀치지 않는다. 화합을 내세운 적이 없지만 화합하는 자연의 선율에 마음이 충만해진다. 일찍이 나옹선사는 서대보다 높은 곳에 있는 북대 미륵암에서 살았다. 선사가 지어 부른 노래는 ‘토굴가’였다. 두런거려 보면 선사가 어떤 마음으로 살았는지 짐작이 간다.
청산은 나를 보고 말없이 살라 하고/창공은 나를 보고 티없이 살라 하네/탐욕도 벗어놓고 성냄도 벗어놓고/물같이 바람같이 살다가 가라 하네.
서대 염불암 입구에는 우통수(于筒水)라는 정겨운 샘이 있다. 이 샘의 한 방울이 흘러 넘쳐 도도한 남한강이 된다. 그러니 이 샘물을 한 모금 마신다면 한강 물을 들이켜는 것과 다름없다. 나도 한 입에 한강 물을 삼킨다. 가파른 산길에서 땀을 흘린 자만이 마시는 축복의 물이다. 고통이 없으면 행복도 없는 법이다. 우통수에서 다시 힘을 얻는다.
▼욕망과 성냄의 짐 훌훌 털고▼
마침내 나는 서대 염불암 마당에 선다. 작년에 왔을 때와 조금도 다르지 않은 너와집 암자이다. 투명한 햇살을 받아 빛나는 등신불 앞에 선 느낌이다. 누구라도 생존을 위해 최소한의 것만 소유하고 있는 너와집 암자 뜰에 서 보라. 무소유가 무언지 스스로 깨달아지리라. 나옹스님이 환생한 듯 ‘토굴가’가 절절하게 들려 올지도 모른다. 욕망과 성냄의 짐을 얼마나 무겁게 지고 사는지 절로 알게 될 것이다. 뿐만 아니라 머리카락도 안 보이게 꼭꼭 숨었던 ‘나 안의 나’가 보이게 될 터이다.
그런데 나는 지금 머리가 무거워진다. 나로 인하여 산짐승의 발길이 잦았던 서대 염불암이 사람떼로 몸살을 앓지는 않을지 걱정된다. 무례한 잡인(雜人)의 발걸음이 두렵다.
정찬주(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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