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려오는 한적한 시골마을 거제도 신현읍 수월리. 이곳에서 닭 4만마리를 키우고 있는 이동수(李東洙·66) 할아버지를 만났다.
밖은 아직 어둑어둑한 새벽 4시. ‘꼬끼오∼’하는 닭 울음소리에 이씨는 눈을 뜬다. 그가 가장 먼저 한일은 PC를 켜고 인터넷에 접속하는 일. 날씨를 알아보기 위해 기상청 홈페이지에 들어가 최근의 위성사진을 들여다본다. 시시각각 변하는 구름의 이동속도와 양, 기압골의 위치를 보면 비가 올지, 날씨가 맑을지를 이제는 직감적으로 알아낸다고 했다. “시골에서는 날씨가 중요해요. 비가 오고 안오고에 따라 그날그날의 작업내용이 달라져야 하니까요.”》
날씨를 ‘예측’한 뒤에는 농림부와 양계협회 등 농업관련 웹사이트 10여곳을 차례로 ‘서핑’한다. 그날의 가격동향을 살피기 위해서다. ‘정보’에서 뒤지면 이익내기가 그만큼 어렵다는 사실은 30년간 닭을 키워 내다팔면서 체득한 것.
“컴퓨터는 첨단 농기구예요.” 이씨가 프로그램을 바꾸면서 중얼거리듯 내뱉는다.
그가 자주 이용하는 프로그램은 ‘엑셀’소프트웨어. 인터넷에서 정보를 얻고 데이터를 입력하면 어려운 계산도 순식간에 해결해주기 때문. 다른 양계농가가 겨우겨우 본전맞추기에 급급할 때 그는 연간 3억원의 매출에 4000만∼5000만원의 이익을 거두었다.
가격이 좋을 때 집중출하하는 그의 ‘정보력’과 ‘계산력’이 빛을 발한 것이다.
이씨는 6년전 PC라는 물건을 처음 접했다. 둘째딸이 시집가면서 남겨놓은 286 PC였다. 그로부터 독학으로 컴맹을 탈출한 이씨는 지금은 인터넷과 각종 소프트웨어를 능수능란하게 다루는 ‘파워 유저’(Power User)다.
그가 정보화로 큰 소득을 올리자 농업진흥청 등에서 강연을 해달라는 요청이 쇄도했다.
이씨의 삶은 ‘농사꾼에게 왜 컴퓨터가 필요한가’라는 질문에 대한 가장 정확한 대답을 주고있기 때문. 지금은 대기업과 대학까지 나가 농업정보화를 외치고 있다.
“말로만 설명하니까 잘 안 믿어요. 늙은 시골 노인이 알아봐야 얼마나 알겠냐는 식이에요. 그래서 데스크톱PC를 차에 싣고 다녔습니다. 효과적인 설명을 위해 ‘파워포인트’ 소프트웨어까지 이용해 실제로 하고 있는 일을 보여주니까 표정들이 싹 바뀌더군요.” 이씨는 통쾌하다는 듯 웃는다.
이씨가 이곳저곳에서 강의요청을 받는 이유는 더 있다. 해군 복무시절 10여년간 교관생활을 하면서 익힌 자연스러우면서도 재미있는 화법 덕분이 크다. 그가 강의할 때 조는 사람을 본 적이 없다는 게 주변의 전언.
수강생들이 대기업 간부가 됐던 대학생이 됐던 그는 강단에 넥타이를 매거나 정장을 입지 않고 나선다. 평상시 농장에서 일하는 복장과 별로 다르지 않은 작업복 차림으로 슬금슬금 올라간다.
겉모습만 보면 영락없는 시골 할아버지 모습. 아무도 경계를 하지 않기 때문에 오히려 분위기를 부드럽게 하고 강의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다는 것. 수수한 외모와 거침없는 화술, 앞선 정보화마인드가 그의 강의를 돋보이게 하는 요소다.
수월리 농장에는 퇴직금을 밑천삼아 양계사업을 시작하려는 사람들도 심심치 않게 찾아온다. 그때마다 이씨는 친절하게 설명해주면서 ‘농업도 경영’이라는 개념을 잊지 말라고 신신당부한다.
‘촌사람이 되지 말고 농업경영인이 되라’는 게 그의 충고다. 씨뿌리고 거두는 식으로 무조건 짓기만 해서는 더 이상 경쟁력이 없다는 것.
농사를 짓거나 가축을 사육하는 데 원가가 얼마나 들었고 얼마에 팔아야 적정 이윤이 생기는 지를 세밀히 따져보는 ‘경영’자세가 필요하다고 했다. 4평 남짓한 농장사무실에 놓인 책상 위에는 종이가 한 장도 없다. 최신형 데스크톱 PC 2대와 노트북PC를 비롯해 스캐너 팩스 프린터 등 정보기기들이 사무실에 가득하다.
컴퓨터를 배우기 전에는 일일이 계산기를 두드려가며 장부에 비용을 기록했지만 지금은 모든 데이터를 PC에 바로 입력하고 있다.
E메일주소 yts1414@yahoo.co.kr. ‘1414’는 2의 루트값이라는 설명. 055―635―9713
<거제〓성동기기자>espri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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