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포럼]차하순/지도자 판단이 역사를 바꾼다

  • 입력 2000년 11월 16일 18시 39분


국가적 중대사나 국제 관계의 주요한 결정은 정치 지도자의 책임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정치적 결정이 중대성을 띤 것일수록 전 국민의 운명을 좌우할 뿐만 아니라 후세에까지 영향을 미친다. 그런 의미에서 정치가는 역사의 준엄한 심판을 받게 되는 것이다. 이 점은 우리에게 역사적 사실이 분명히 가르치고 있다.

히틀러의 측근이며 나치 독일의 공보책임자인 괴벨스는 독일 기자들과 가진 극비 회견에서 1930년대 프랑스의 유화정책 때문에 나치 독일의 침략 행위는 가능했다고 회고했다. 프랑스 총리라면 1933년에 이렇게 말했어야 했다는 것이다. “독일의 새 총리 히틀러는 ‘나의 투쟁’을 쓴 사람이다. 그 내용이 이러저러한데, 이런 사람을 그냥 놓아둘 수는 없다. 저쪽에서 자진해서 사라지지 않으면 이쪽에서 쫓아내야 한다.” 하지만 프랑스 총리는 히틀러를 적극 가로막지 않았기 때문에 독일은 마음대로 군비(軍備)를 갖추고 전쟁을 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프랑스가 나치 독일의 잠재적 위험을 깨닫지 못하고 있는 동안 또 다른 유럽의 강대국 영국도 히틀러의 참다운 모습을 파악하지 못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언론은 정부의 유화정책에 거의 무조건 맞장구를 쳤다. 영국 굴지의 일간신문은 히틀러가 “독일이 세계 강국이 되는가, 망하는가의 어느 하나다”라고 한 말은 독일 국내용에 불과하다고 해설했다.

당시 영국 사회에는 히틀러가 평화주의자라는 확신이 널리 퍼져 있었다. 유화주의자들이 인도주의를 가장해 여론을 주도했고 일부 종교계 지도자들까지 히틀러가 세계 평화에 크게 기여했다고 공언할 정도였다.

이런 유화 분위기에서 히틀러의 침략은 노골화했다. 1936년 서쪽으로는 라인란트를 병합하고 1937년 남쪽의 오스트리아와 동쪽의 체코슬로바키아를 침략했다. 독일군은 오스트리아에 쳐들어가 닥치는 대로 죽이고 약탈했다. 이미 세계적으로 유명해진 정신분석학자 프로이트가 빈의 아파트를 습격당했을 때 부인은 독일군에게 살림 돈을 몽땅 내놓았다. 겨우 출국이 허용된 프로이트는 독일군의 융숭한 대접을 받았다는 서약서에 서명하지 않으면 안되었다. “게슈타포는 누구에게나 진심으로 추천할 수 있는 사람들이다”라고 썼다.

히틀러는 휘하 장군들에게 영국의 체임벌린 총리와 프랑스의 달라디에 총리가 집권하는 동안은 연합국이 선전포고를 해 오지는 않을 것이라고 장담했다. 이런 히틀러의 장담이 있은 지 보름만에 영국 내각은 만장일치로 다음과 같이 결정했다. “히틀러에게 조금도 위협을 가해서는 안되며 만일 그가 체코슬로바키아를 침입한다면 영국은 선전포고를 한다. 다만 이 결정을 극비로 해두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강경 노선이 효과를 거두기 위해서는 널리 알리는 것이 중요한데도 그와 반대로 쉬쉬한 것은 도저히 이해하기 어려운 결정이었다. 이는 히틀러를 더욱 더 자신만만하게 만들었고 결국 독일 침략군은 체코슬로바키아를 마음대로 짓밟았다.

프랑스와 영국의 지도자들이 평화라는 미명 아래 히틀러를 마음대로 행동하도록 허용한 유화정책은 궁극적으로는 유럽의 평화를 파괴했을 뿐만 아니라 전 세계를 대규모 살상의 도가니로 몰아넣었다.

적어도 1937년 체코슬로바키아 침략에 대해 영국이 확고한 태도를 취했더라면 독일은 감히 침략할 엄두를 내지 못했을 것이며 2차대전도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체임벌린은 달라디에와 함께 독일에 대한 유화정책으로 일관했다. 히틀러는 이 점을 교묘히 이용하면서 침략 행위를 계속했다. 1936∼37년의 일련의 사건은 국가 지도자의 판단 착오가 얼마나 무서운 결과를 낳게 되는가를 알려주는 좋은 경우다.

존 F 케네디는 외교정책의 목적이 국민 감정의 배출구를 마련하는 데 있지 않고 ‘현실 세계에서 현실적인 사건’을 만들어 나가는 데 있다고 말한 바 있다. 짝사랑 같은 일방적인 희망이 국제사회에서 통하지 않는다는 사실은 1930년대 영국과 프랑스의 정치 지도자들이 나치 독일을 상대로 한 몽상적인 평화주의 추구에서 예증됐다. 중요한 정치적 결정은 정확하고 현명한 역사적 판단이 돼야 하며 이를 위해서는 원대한 시각에 따른 역사적 통찰이 필요한 것이다.

차하순(서강대 명예교수 ·국제역사학회의 한국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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