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시장이 위축세인데다 다섯권짜리 책이라 독자들이 부담도 느낄 것으로 생각해 처음엔 자신이 없었죠. 그런데 책이 출간된 뒤 느낌이 좋더라구요. 수 백권이나 되는 책을 펴내다 보니 느낌이 대충 옵니다. 발간 직후 이토록 서점에서 반응이 좋은 책은 처음입니다.”
―어떤 점이 독자들을 끌어들인다고 보십니까?
“성공하는 책은 시대적 상황과도 맞아떨어져야 합니다. 예를 들어 1972년 신문 연재를 시작했던 ‘별들의 고향’도 그랬죠. 당시는 산업사회가 외형적으로 폭발적 성장을 보이던 시기였고 개인들의 소외도 커졌어요. 삭막한 도시에서 버림받은 젊은이의 이야기가 먹힐 수 있었던 것이죠. ‘상도’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시대의 진정한 상업윤리를 요구하는 독자들의 소망이 책과 맞아떨어졌던 것 같습니다.”
―70년대 초반에는 젊은 세대의 목소리를 대변했고, 이후 ‘왕도의 비밀’ 등에서 고대사를 훑었는가 하면, ‘길없는 길’에선 구도의 세계에 깊이 빠지기도 했어요. 몸놀림이 날렵한 작가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의도적으로 변신에 신경쓴 것은 아닙니다. 성격상 자유주의자라고나 할까요. 한 곳에 머물러있는 것을 견디기 힘들어 합니다. 몇 년 뒤에 쓸 소설을 ‘태아’처럼 늘 뱃속에 갖고 있었고, 지금도 그렇습니다.”
―70년대 청년문화의 기수로 부각되었을 때 기성세대에 편견없는 눈길을 촉구하면서 “청바지는 바지, 통기타는 기타, 생맥주는 맥주일 뿐”이라고 이야기한 것이 인상깊었습니다. 당시 포크문화의 세례를 받은 세대가 지금은 50대 이상이 되지 않았습니까?
“청년문화라는 용어는 당시 동아일보에서 처음 쓰기 시작한 것이죠. 저로 말하자면 청년문화의 기수로 자처하거나 기수가 되기를 원하지는 않았습니다. 시대의 상징적 인물이 필요했고 그 중 하나가 저였던 거죠. 당시엔 가수들도 주로 대학생이었어요. 그들은 해방 이후에 태어난 새로운 세대였고 기성세대와는 다른 의식을 갖고 있었습니다. 사회 전반이 신선한 바람을 원하고 있었어요.”
―2002년 유럽여행을 계획하고 있다고 들었습니다만.
“예수의 삶을 추적하는 여행이 될 겁니다. ‘그가 누구길래 인류사에 등장해 역사를 들었다 놓았다 하나’ 궁금합니다. 될 수 있는 대로 노하우를 축적해 그와 한판 붙고 싶어요. 유럽에 간 김에 아리스토텔레스 이후 철학의 줄기를 죽 훑어볼 계획도 갖고 있습니다.”
―하루 일상은 어떻게 보내십니까, 소설 ‘가족’에 등장하는 가족들은 모두 안녕하신가요?
“하루가 그렇게 행복할 수 없어요. 특히 산에 가는 것이 좋아요. 3년 반 전부터 청계산에 매일 오릅니다. 오후 한시쯤에요. 집필은 오전에 합니다. 밤을 새보니까 몸이 좋지 않아 아침에 정해진 일과로 시간 정해놓고 합니다. 친구는 요즘 거의 만나지 않아요. 혼자 와서 혼자 가는 생이지만 그래도 가장 가까운 것은 아내예요. 아내와 있으면 또하나의 나와 있는 것 같아요. 사탕을 아껴먹듯 야금야금 시간을 보내고 있죠. 한 달 전 딸 다혜가 딸을 낳아 할아버지가 됐어요.”
―문학이 위기라는 말이 자주 나오는데요. 문단에 바라는 바가 있다면….
“요즘 소설은 척추가 없는 것 같습니다. 상황은 있는데 형상화 능력이 결여된 소설, 표현은 좋은데 사변적이기만 한 소설이 많아요. 잘 쓰는 신인이 나오면 무등 태워주고 싶을 정도예요. 문단에 좋은 의미의 스타가 필요합니다. 진짜 잘 써서 사람들이 알아보는 스타 말이죠. 우리나라에는 양식을 가진 고급 독자가 얼마든지 있습니다. 문학의 위기를 논하기 앞서 작가편에서 독자에게 얼마나 철저한가에 대한 성찰이 있어야 할 겁니다.”
<유윤종기자>gustav@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