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처드 핼로란 칼럼]미국혼란 한미관계에 도움 안된다

  • 입력 2000년 11월 28일 18시 38분


이제 한국의 삼척동자도 알 만한 미국 대통령선거 결과를 둘러싼 혼란은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 국가들에도 희소식은 아니다.

한미 양국 관계도 앞으로 최소한 6개월에서 1년 동안은 기껏해야 현 상태가 유지될 수 있을 뿐 관계 개선의 여지가 크게 줄어들었다고 볼 수 있다.

미국은 대통령 선거가 끝난 뒤 완전히 반쪽으로 갈라졌다. 조지 W 부시 공화당 후보와 앨 고어 민주당 후보에게 투표한 유권자는 물론 선거인단 수도 거의 비슷하다. 상당수 남성 유권자들은 부시 후보에게 표를 던졌고 반면에 여성들은 고어 후보를 지지했다. 중소 규모의 주(州)와 도시 카운티 등은 부시 후보를 선택했고 큰 주와 도시는 고어 후보를 지지했다. 고어는 현직 부통령임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고향인 테네시주에서 패배했고 부시는 자신의 친동생이 주지사로 있는 플로리다주에서 확실한 승리를 챙기지 못했다. 의회의 경우 상원은 민주당과 공화당 의원이 거의 동수로 선출됐고, 하원에서도 공화당이 매우 근소하게 다수당 위치를 지켰을 뿐이다.

이런 현상은 결국 유권자들이 대부분 민주 공화 양당 정치인들에게 식상해하고 있다는 것을 잘 보여주는 것이다.

미국의 대표적인 정치평론가인 워싱턴포스트지의 데이비드 브로더는 이 같은 국가분열 현상이 1960년대 사회적 혼돈에 기인한다고 분석했다. 오늘날의 영향력 있는 정치지도자나 기업가 노동운동가 학자 언론인 등은 모두 이 시대를 생생하게 경험하며 자란 세대들이다. 브로더는 1960년대의 특징을 ‘인권혁명, 여성인권운동, 낙태에 대한 논란, 그리고 무엇보다도 베트남전쟁을 둘러싼 국론분열’ 등으로 정의했다.

여기서 중요한 문제는 미국이 얼마나 심각한 정도로 분열돼 있는가 하는 것이다. 이 문제가 앞으로 상당 기간 미국의 외교정책 결정 과정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기 때문이다. 새로운 행정부는 통치력을 확보하기 위해 상당히 애를 써야 할 것이다. 또 어쩌면 상대당과의 연합정부를 구성해야 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전망은 그다지 밝지 않다. 선거일 이후 민주당과 공화당의 심각한 정치적 법적 대립은 모두에게 오랫동안 치유될 수 없는 큰 상처를 남겼다. 선거 이후 두 후보가 보여준 정치적 지도력 부재를 감안할 때 협상의 분위기가 형성되기도 쉽지 않을 전망이다.

세계 유일의 초강대국인 미국이 이처럼 우왕좌왕하는 모습을 보이자 아시아 국가들은 이를 은근히 고소해하기도 했다. 중국의 한 신문은 미국의 선거인단 제도에 대해 “노예시대의 부산물로 인종차별주의와 결부된 제도”라고 꼬집었다. 인도의 한 일간지는 “미국이 얼마나 결점이 많고, 불확실하며, 문제점에 대한 해결책을 찾지 못하는 나라인지를 잘 보여주었다”고 비웃었다. 빌 클린턴 미국 대통령이 그동안 민주주의와 인권에 대해 연설하고 다니던 모습을 생각하면 어쩌면 당연한 반응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미국의 차기 대통령은 앞으로 국내문제에 더욱 신경 써야 할 것”이라는 호주의 한 자유기고가의 지적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미국 내에는 항상 고립주의와 보호무역주의의 기류가 존재해왔다. 다만 강력한 행정부가 이를 억눌러왔을 뿐이다. 만약 대통령의 지도력이 약화된다면 이런 기류가 수면 위로 떠오르게 될 것이고 이는 한국과 아시아에도 악영향을 미치게 될 것이다. 지난해 아시아의 대미수출 총액은 3600억달러(약 417조원)에 이르렀다. 미국의 보호무역주의는 아시아의 대미 수출에는 치명적이다.

미국의 정치적 혼란이 극에 달했지만 다음과 같은 세 가지 긍정적인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첫째, 개표와 재검표 등에 대한 송사(訟事)가 복잡하게 진행돼 왔지만 이는 대체로 미국의 헌법과 법의 테두리 안에서 이뤄지고 있다. 둘째, 미국의 군은 전혀 동요하지 않고 있다. 아시아 등 세계 여러 국가들은 정치적인 혼란이 심화될 때 군이 나서서 해결책을 제시하려는 경향을 보여왔지만 미군은 국방의 의무에만 충실하고 있다. 셋째, 가장 중요한 것은 미국 국민이 이런 정치적 혼란을 유머감각과 풍자의 대상으로 삼고 있다는 것이다. 국민이 스스로의 정치적 결함을 웃음의 소재로 삼는 한 미국의 민주주의는 안전하다고 봐도 무방하다.

(전 뉴욕타임스 아시아지역특파원·현 아시아문제 전문 자유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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