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히 사람들이 맹신하는 민주주의란 제도의 제1원칙이 많은 수가 힘이라는 등식이지 않은가.
여소야대 정국의 제1당이 그렇게 판단하는 것은 대통령 때문이 아니다. 아마도 검찰인 것 같다. 물론 대통령이 검찰을 움직인다고 믿는 불신이 전제돼 있지만, 검찰이 보이지 않게 여당에 가담해 있기 때문에 힘에서 뒤진다고 화를 낸다. 그만큼 검찰은 막강한 힘을 갖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공정인사가 중립성보장 열쇠▼
야당은 검찰 때문에 피해를 보았다고 주장한다. 예를 들면 선거법 위반에 대한 수사 결과가 그렇다고 한다. 한나라당의 주장에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꽤 오랫동안 넓게 확산돼 있는 검찰권 행사에 대한 불신의 현상을 보면 무시할 수도 없는 일임에는 분명하다.
검찰의 힘이 수적 열세에 있는 여당에 가세했다는 명백하고도 구체적인 증거는 없다. 그런 확실한 증거가 있다면 검찰총장은 탄핵되고 말았을 것이다. 그러나 세상의 일이 항상 그렇듯, 상충되는 이익 사이의 진실에 뚜렷한 증거는 발견하기 어렵거나 존재하지 않는 법이다.
여당이나 정부와 검찰이 공모적 협력을 도모한 사실이 있다고 해도 흔적을 남기지 않기 위해 필요한 조치를 취했을 것이다.
최근 동아일보의 심층기획 보도는 이 난제에 대한 방증으로서의 가치가 있는 듯해 주목된다. 법조팀이 대학 연구진과 협동해 검찰 인사에 대한 분석 결과를 내놓았다. 92년 이후 전체 검사의 신상정보와 그 변동사항을 추적한 것이다.
결론은 현 정부 출범 이후 지역편중 인사가 두드러졌다는 것이다. 핵심적 통계는 이런 것이다. 일정 직위 이상의 검찰 요직의 경우 호남 출신이 93년 10월 5%였으나, 금년 7월에는 33%로 늘었다. 반면에 영남 출신은 51%에서 21%로 줄었다. 그에 따른 결론은 정부가 인사를 통해 검찰을 장악하려 했다는 추론이다.
이런 추론의 결과를 어느 정도 신빙성이 담보되는 사실로 인정하는 데는 많은 검증과정이 필요할 것이다. 검찰의 지역편중 인사가 사실이라면 그것은 현 정부에서 일어난 현상이냐, 아니면 과거의 악습을 되풀이한 것이냐. 지금의 요직 인사 결과가 영호남 출신 검사 수에 비례하지 않기 때문에 비난받는가, 그 자체로도 문제인가. 만약 잘못된 인사라면 종전의 분포로 되돌려야 옳은가. 임명된 사람이 부적격인가, 인사 절차가 불합리한 것인가.
자신 있게 대답할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하나만은 분명하다. 수백 번 되풀이되는 것이지만 검찰은 정치적으로 독립해야 하고 중립성을 확보해야 한다.
검찰의 독립성과 중립성은 검찰 인사에 의해 크게 영향을 받는다. 검찰의 독립성과 중립성은 검찰 인사의 독립과 중립에서 시작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현 정부에서 드러난 검찰 인사의 이상기류는 바람직하지 않다.
▼대통령 형식적 임명권자여야▼
인사는 합리적 원칙과 기준에 의해 운용돼야 한다. 그래야 검사들로 하여금 예측가능성을 갖도록 할 수 있다. 그런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되면, 본인이 원하지 않은 인사 결과에 대한 승복도도 높을 것이다. 이런 기회에 다시 검찰 인사제도에 대한 개혁이 논의되지 않을 수 없다. 검찰인사위원회 규정을 대폭 고쳐 실질화해야 한다. 위원의 수와 구성방식을 바꾸고, 대통령은 형식적 임명권자에 그쳐야 한다. 특별검사제를 사실상 상설화해 정치적 사건에서 검찰 스스로 물러나도록 해야 한다. 인사청문회 도입을 빠뜨릴 수 없는 것은 물론이다.
정치권력이 검찰권을 도구로 사용하려는 악습적 인식은 위험하다. 정치적 의존도가 높은 우리 사회를 혼란으로 몰아넣는 주범이나 다름없다. 수의 부족을 검찰의 힘으로 메우려는 여당이나 검찰청법 개정안을 들고 나온 야당이나, 모두 법치주의를 허물어뜨리는 마약의 유혹을 떨쳐야 한다.
차병직(변호사·참여연대 협동사무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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