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한국천주교회史 연구 大家 최석우신부 인터뷰

  • 입력 2001년 2월 1일 18시 48분


“천주교회가 언제까지 외화내빈의 행사에 만족할 것인가, 지난해말 발표된 천주교회의 참회문건은 진정 과거의 잘못을 제대로 반성했는가?”

한국천주교회사 연구의 대가(大家)인 한국교회사연구소장 최석우(崔奭祐·79) 신부. 2월말 소장 은퇴를 앞두고 있는 그가 1월31일 서울 명동 가톨릭회관 교회사연구소 소장실에서 기자를 만나 이같이 밝혔다. 그의 이같은 발언은 매우 이례적인 것으로 앞으로 천주교회 내에서 큰 파장이 예상된다.

2일은 서울 명동성당에서 열리는 개막미사를 시작으로 신유박해 200주년 기념행사가 시작되는 날. 순교자현양위원회 주관으로 서울 동대문운동장에서의 신앙대회, 로마 교황청에 소장된 황사영 백서(黃嗣永 帛書)의 전시 등 내년 2월 4일까지 각종 행사가 열릴 계획이다.

“신앙대회 같은 겉만 화려한 행사는 이번만은 꼭 피했어야 했다. 신유박해가 뭔가. 수많은 신자가 순교를 당했지만 누구도 시성시복(諡聖諡福)을 받지 못한 박해가 아닌가. 이들이 시성시복에서 제외된 것은 증거 자료의 부족에 기인한 것이다. 기념은 무명의 순교자에게까지 관심을 돌려 이들의 행적에 관한 자료를 수집하고 그 순교의 정신을 이어받는 것이어야 한다.”

천주교 최초의 대박해인 신유박해는 기해(1839년) 병오(1846년) 병인(1866년)박해와는 다른 독특한 위치를 갖고 있다. 기해박해 이후의 순교자는 파리외방선교회가 주도한 시복시성운동에 의해 1984년 시복시성작업이 끝났다. 신유박해만 제외된 것은 프랑스 신부들이 들어온 1835년경 이미 당시 순교의 목격자들이 사라지고 없었기 때문이다.

최 신부는 5년 전인 1996년 당시 서울대교구장이었던 김수환 추기경에게 신유박해 순교자 시성시복작업을 제안했다. 역사위원회를 설치해 5년간 증거자료를 수집, 조사한 뒤 순교자 명단을 교황청에 올려 정식으로 재판을 받게 하자는 것으로 한국교회가 주도하는 제2의 시성시복운동이었다.

“추기경께서 흔쾌히 받아들여 약 60명의 순교자 명단과 함께 조사계획서를 올렸는데 서울대교구의 모 보좌주교가 ‘순교자현양위원회의 권한’이라며 막았다. 2년이 지나 정진석 대주교가 부임한 후 다시 만나 이 문제를 거론하고 ‘권한이 순교자현양위원회에 있다면 거기 위원장을 역사위원회 위원장으로 삼아서라도 조사를 진행해달라’고 했으나 또 흐지부지 2년이 지났다. 지난해말 정대주교를 만나 이제는 명단과 근거자료를 올려야 할 땐데 못했으니 그 잘못을 문책해야 한다고 말했다.”

최 신부는 지난해 12월 천주교 주교회의가 발표한 과거사 참회문건에 조상제사 금지와 신사참배에 대한 반성이 빠진 것에 대해서도 교회사가로서 냉철하게 비판했다. 당시 주교회의는 조상제사 금지에 대해 ‘교회가 민족에게 피해를 입힌 것이 아니라 교회가 이로 인해 핍박을 받은 것이므로 민족 앞에 반성할 사항은 아니다’고 밝혔다. 또 신사참배에 대해서는 ‘당시 신사참배에 참여한 성직자나 평신도들이 이를 정치적 의례로 여겼지 종교적 의례로 여기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교황청의 문헌을 보면 사죄를 누가 누구에게 하는 것인지 밝히고 있다. 교회의 사죄는 교회가 속한 민족에게만 하는 것이 아니라 교회의 신자들에게도 하는 것이다. 신자들에게 조상제사를 금지시켜 박해를 초래한 것도 교회의 반성대상이다. 신사참배가 정치적 의례이지 종교적 의례가 아니라는 논리는 바로 일제의 논리를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당시 신사참배를 지금 문화관광부 종무과에 해당하는 기관에서 관할했다는 것은 신사참배가 종교적 의례였다는 명확한 증거 중 하나다.”

최 신부는 올해로 신부생활 51년째를 맞으며 신부로서의 일생을 거의 모두 교회사 연구에 바쳐왔다. 그와 고등학교, 신학교 동기인 김 추기경은 이런 그를 두고 지난해 금경축(金慶祝·사제서품 50주년)미사에서 ‘한국교회의 국보적 존재’라고 일컫기도 했다.

인터뷰 내내 최 신부의 말에서는 한국천주교를 대표하는 교회사가로서 조상제사 금지의 희생자가 된 신유박해 순교자들을 제대로 현양하지 못한 데 대한 안타까움이 짙게 느껴졌다.

<송평인기자>pis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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