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하며 생각하며]김유경/다가서면 노숙자도 이웃

  • 입력 2001년 2월 21일 18시 21분


1998년 봄 서울역은 갑자기 몰려온 실업대란으로 갈 곳을 잃은 사람들로 북적댔다. 아주 우연한 인연으로 나는 그 때부터 매일 아침 서울역으로 출근한다. 서울역으로 출근하기 시작한 뒤 세번째 맞은 이번 겨울은 유난히 추웠다.

▼쉽게 비판하고 쉽게 동정해▼

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300명 안팎의 사람들이 서울역, 영등포역, 을지로, 종로, 시청, 회현역 일대에서 노숙생활을 하고 있다. 혹한의 날씨와 경제한파로 이중의 추위에 떨며 날이 풀리기만을 기다리는 숱한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날이 풀리면 없는 돈에 방값을 축내느니 차라리 거리로 나올 수밖에 없는 이른 바 잠재노숙인들 말이다.

두툼하게 옷을 껴입어도 몇 분 버티고 서있기 어려울 정도로 추운 날씨가 계속되는데도 거리에는 신문지 한 장 없이 맨몸으로 드러누운 사람들이 있다. 그들을 상담하는 나도 너무 추워서 부들부들 떨리는데, 간혹 지나가며 저런 ××들 도와줘봐야 로 시작되는 충고 아닌 충고를 하는 사람들이 있다. 죽음이 눈앞에 오락가락하고, 실제로 동사한 사람도 있는데 그야 말로 자기 눈에는 그저 저런 ××들 이니 다들 얼어죽어도 좋다는 것인지….

우리가 노숙하는 사람들을 만나게 되는 거리도 하나의 사회다. 노숙인이라고 하면 흔히 단신의 성인 남성만 떠올리지만, 일반적인 사회가 그러하듯 거리사회 에도 아동이 있고, 청소년이 있고, 장애인이 있고, 여성이 있고, 가족이 있다. 고아로 자란 어린 시절부터 어느 한 곳 제대로 정착해본 적이 없이 떠돌이 생활을 해온 사람들로부터 이제 막 거리로 나와 불안에 떠는 사람에 이르기까지 노숙경험도 다양하다. 차라리 죽고 싶은 절망감에 몸부림치는 사람, 어떤 노력도 무의미하다는 체념에 빠진 사람, 어떻게든 살아보기 위해 몸부림치는 사람에 이르기까지 거리에는 다양한 인간군상이 있다. 그런데도 이들을 싸잡아 쉽게 비판하고 쉽게 동정하는 사람들을 보면 안타깝기 그지 없다.

내가 몸담고 있는 노숙인다시서기지원센터에서는 노숙인들의 동사를 예방하기 위해 노숙인들이 많은 지역을 중심으로 겨울철이면 밤마다 거리상담을 한다. 이번 겨울 심야상담에는 민간 자원봉사자들도 많이 참여했다. 이들 자원봉사자들은 대부분 한번쯤은 서울역을 지나다니다 노숙하는 사람들을 본 경험이 있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상담활동을 하기 전에는 아무 부담없이 노숙인들을 비판하고, 자신과 다른 이상한 사람들이라고 생각했었다고 한다. 못본 척하거나 모르는 척하며 가볍게 스쳐 지나갈 수도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자원봉사자로 상담활동에 참여하면서 어쩌다 한번 스쳐 지나가던 이런 관계의 폭이 훨씬 좁혀지는 것을 보게 된다. 3개월 정도 계속된 상담활동을 통해 처음 상담하러 나갈 때의 부담스러움이 이제는 사람이 사람을 만난다는 자연스러움으로 변했다. 상담원이라면 아예 상대조차 하지 않던 노숙인들이 조금씩 입을 열기 시작하고 가끔은 상담원을 챙겨주는 마음 씀씀이로 우리를 감동시키기도 한다.

좀 더 가까이 다가서면 멀리 떨어져 가볍게 내뱉던 어떤 판단도 조심스러워지던 경험이 누구에게나 있을 것이다. 노숙인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이상하고 못마땅하게 쳐다보는 눈빛 은 그들의 생활을 일반적인 세계와 계속해서 단절시킬 뿐이다. 단순히 불쌍하다고 주머니를 털어 돈을 건네거나, 순간적인 동정심 때문에 무책임한 약속을 하고 지나치는 것은 전혀 도움이 될 게 없다.

▼날씨 풀린다고 잊을수야▼

자원봉사자들과 함께 한 겨울밤 거리상담. 한 때 노숙인을 구경하듯 스쳐 지나가던 자원봉사자들은 이미 노숙인들과의 새로운 관계를 형성하고 있다. 가끔은 그분들로부터 먼저 위로받기도 하고 지지받기도 한다. 가까이 다가서면 모두가 다 이웃이다.

노숙인에 대한 사회의 관심은 계절을 많이 탄다. 해마다 겨울이 되면 노숙인 문제에 대한 사회의 관심이 매우 크다가도 겨울이 지나면 금방 식어버린다. 날씨가 서서히 풀려 가끔씩은 봄이 멀지 않았구나 하는 느낌이 드는 요즘, 노숙인들은 또 방치되고 잊혀지겠구나 하는 걱정이 앞선다. 생계 걱정에 한숨을 내쉬며 거리로 밀려나는 사람들은 계속 늘어가고 있는데 말이다.

김유경(사회복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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