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박물관장 재직 시절인 86년 중앙박물관을 지금은 철거된 옛 조선총독부 건물로 옮겨 국제 수준의 박물관으로 발돋움시키는데 기여했고 88년 서울올림픽 기념 ‘한국의 미’ 특별전 등 굵직한 전시를 기획해 호평을 받기도 했다.
발굴 업적도 빼놓을 수 없다. 70년대 부산 동삼동 패총과 서울 암사동 유적 등 신석기 유적을 직접 발굴해 한반도에 독자적인 선사문화가 존재했음을 밝혀냈다.
고인은 늘 열정적이었다. 85년부터 문화재위원을 맡아온 그는 박물관장 퇴임 이후 최근까지도 전국의 발굴 현장을 거의 빠짐없이 누비면서 후배 고고학자들을 지도해왔다. 이러한 열정은 개발 논리에 따라 유적이 파괴되는 것을 막는데도 한몫했다. 1997년 경부고속철도 경주 도심 통과 철회, 지난달 경주 경마장 건설 계획 백지화에도 그의 공로가 컸다.
고인과 가까운 사람들은 그의 큰 몸집을 빗대 ‘곰’이라는 별명을 붙였다. 별명은 그의 스타일을 그대로 보여준다.
우직함과 특유의 뚝심을 바탕으로 한 강한 보스 기질, 신중하지만 한 번 결정하면 흔들림없이 밀어붙이는 추진력, 두주불사(斗酒不辭)의 주량에 거침없는 달변…. 이러한 호방하고 서민적인 스타일로 인해 그의 주변엔 늘 사람들이 모였다.
고인은 한일학술장려상 홍조근정훈장 은관문화훈장 등을 받았고 ‘토기와 청동기’ ‘한국의 미’ ‘한일교섭 고고학’ 등의 저서를 남겼다. 유족으로는 부인 김화선(金和善)씨와 봉근(奉根·MBC PD) 봉진(奉辰·여행업) 영아(榮娥·회사원)씨 등 2남1녀가 있다.
<이광표기자>kple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