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포럼]이정전/도덕심이 바로 국가경쟁력

  • 입력 2001년 3월 8일 18시 36분


한 달여 전 우리나라의 환경지속지수(ESI)가 세계 122개국 중 95위로 하위권에 속한다는 스위스 다보스포럼의 발표에 많은 사람이 충격을 받았다. 사실 우리나라 환경의 질이 선진국에 크게 뒤진다는 것은 이미 잘 알려진 것이니 그리 놀랄 것도, 새로울 것도 없다.

이렇게 환경관련 지수에 대해서는 사람들이 많은 관심을 가지면서 왜 한 사회의 도덕심 수준을 나타내는 지수에 대해서는 별로 말이 없는 것일까? 신문을 펼쳐 들면 부정부패, 비리, 범죄, 도덕적 해이 등에 관계되는 기사가 1면부터 줄을 잇고 있다. 반면에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환경관련 기사는 저 뒤에 있다. 사람들의 대화에서도 환경문제보다는 부정부패나 사회비리에 대한 내용이 훨씬 더 많이 나온다. 그런데도 우리 사회의 도덕심 수준을 나타내는 지수가 발표됐다는 얘기는 들어본 것 같지 않다.

▼양심-정직은 경제성장 토대▼

최근 학계에서 도덕심에 대한 연구가 많이 나오고 있는데 이는 도덕심의 감소에 대한 사회적 우려를 반영한다. 철학자들과는 달리 사회학자나 정치학자들은 도덕심이라는 철학적인 말보다는 ‘사회적 자본’이라는 말을 자주 사용한다. 학자에 따라서 약간씩 다르지만, 우리 나라에도 잘 알려진 프랜시스 후쿠야마 교수는 ‘트러스트(신뢰)’라는 저서에서 사람들이 상호신뢰 아래 협력하는 능력을 사회적 자본이라고 정의하는가 하면 이런 능력이 구체화된 시민공동체나 시민들 사이의 연결망으로 정의하는 학자도 있다.

전통적으로 미국은 이 사회적 자본이 풍부해서 빠른 경제성장과 탄탄한 민주화를 이룩할 수 있었던 대표적인 나라로 꼽혀 왔다. 하지만 장기간에 걸쳐 이 사회적 자본이 서서히 감소한 결과 이제는 미국사회가 옛날 같지 않다고 후쿠야마 교수는 말한다.

하버드대 로버트 퍼트남 교수도 구체적인 정황을 들어서 미국사회에서 사회적 자본의 현저한 감소현상을 지적하고 있다. 1997년에 이를 뒷받침하는 실증연구 결과도 나왔다. 이 연구 결과는 두 가지 지표를 이용해 한국을 포함한 세계 29개국의 사회적 자본 수준을 비교하고 있어 흥미를 끈다. 두 가지 지표는 국민 사이의 상호신뢰에 관한 것과 양심이나 정직 등 시민도덕심에 관한 것이다. 이 지표에 의하면 한국은 29개국 중에서 14, 15위에 해당한다. 사회주의적 요소가 강한 스웨덴 노르웨이 등 북유럽 국가들이 단연 최상위에 올라 있고 미국도 상위권에 속해 있다. 일본은 우리보다 높다. 상호신뢰에 관한 지표만 보면, 20년 전만 해도 미국은 최정상급이었지만 1997년에는 8위로 처졌다.

이 연구는 두가지 지표를 이용해 사회적 자본의 중요성을 실증적으로 확인하고 있다. 가령 사회적 자본의 수준과 경제성장률 사이에 높은 상관관계가 있음을 확인함으로써 사회적 자본이 경제성장에 크게 기여한다는 기존의 가설과 사회적 자본이 정부의 질을 높이는 데 기여한다는 가설도 검증됐다. 재미있는 발견은, 한 나라의 변호사 수가 사회적 불신의 정도를 반영한다는 점이다. 즉, 법학도의 수가 1% 증가할 때마다 신뢰지표는 1% 이상 감소한다는 것이다. 사회적 자본의 감소는 사회체제를 유지하는 비용을 높인다. 예컨대 미국은 전체 인구의 1% 이상을 교도소에 가둬놓고 있다. 미국에서 죄수 1명을 교도소에 가둬두는 데 들어가는 비용이 일류호텔 방값 만큼이나 비싸다니 교도소 유지에만도 엄청난 돈이 들어가는 셈이다. 사회적 자본의 감소는 민주주의 발달에도 지장을 준다는 점도 많이 지적되고 있다.

▼자본주의 논리 맹신은 곤란▼

그러면 왜 사회적 자본이 감소하는 경향이 나타나는가? 퍼트남 교수는 가정 해체, 여성운동, 잦은 주거이동, 나홀로 놀이문화 등을 요인으로 꼽았다. 그러나 이런 것들은 표면적인 요인들이고 그 뒤에는 자본주의 논리와 시장원리가 깊숙이 작용하고 있음을 본다. 자본주의 시장경제가 사익추구를 정당화하고 개인주의를 부추기며 경쟁을 조장하는데 사회적 자본이 감소하지 않을 수 없다.

사회적 자본은 자본주의 시장경제를 떠받드는 초석이지만, 자본주의 시장의 확산 및 발달이 이 초석을 갉아먹음으로써 시장경제의 유지 비용을 점점 더 비싸게 만들고 있으니 묘한 모순이 아닐 수 없다.

이정선(서울대 환경대학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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