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론 각하가 대통령 되신 것을 진심으로 기뻐하고, 개혁의 대 역사(役事)가 성공리에 완수되길 열망하던 수많은 사람이 쓸쓸히 등을 돌리는 모습이 눈에 거슬리기는 합니다. 그러나 역시 신경쓸 것 없습니다. 역사의 심판에 모든 것을 걸면 됩니다.
▼신의가 뭐 중요합니까▼
공자가 말했지 않습니까. 상록수인 소나무가 다른 낙엽수와 구별되는 것은 겨울이 된 뒤의 일이라고. 양심에 비춰 부끄러움이 없으면 걱정도 두려움도 없는 법. 풀 위로 바람이 불면 풀은 눕기 마련입니다. 좌고우면할 것 없이 정권 재창출을 위해 매진해야 합니다.
차제에 한 말씀드릴까 합니다. 각하가 공자 같은 사람이 한 말에 대해 너무 부담을 느끼시는 것 같은데, 그럴 필요 없습니다. 공자는 정치의 근본원리를 ‘바로잡는 것(正)’이라면서 지도자가 신의를 지키며 솔선수범할 것을 무엇보다 중요하게 여겼습니다. 그러면 따르지 않을 사람이 없다고 생각했지요.
그러나 공자의 말 가운데는 맞는 것보다 틀린 것이 더 많습니다. 보세요. 덕이 있는 사람은 결코 외롭지 않으니(德不孤), 반드시 이해하고 동조하는 사람이 생긴다고 했습니다. 과연 그렇습니까? 지난 3년 동안, 우리는 얼마나 인내하며 기다렸습니까? 그 결과는 무엇입니까? 이래서야 어떻게 큰 뜻을 펼 수 있습니까. 공자 말은 시대에 맞지 않습니다. 그러니 묵살해 버리세요.
아리스토텔레스가 한 말도 귀담아 듣지 마세요. 그는 지배자가 국민에 대해 교만해지고, 그래서 국민이 지배자와 정치에 대해 경멸감을 느끼게 되는 것이 혁명의 제1 원인이라고 했습니다. 국민을 기만하는 책략을 쓰지 말라는 경구도 남겼습니다.
아리스토텔레스 같은 대학자가 하는 말이니 께름칙하기는 합니다. 그러나 그는 지금부터 물경 2400년 전 사람입니다. 구닥다리 정치학에 귀기울일 필요 없습니다. 그보다는 근대 정치학의 창시자로 불리는 마키아벨리의 말이 훨씬 더 진리에 가깝습니다.
그는 로마의 영광은 간데 없이 분열과 외침에 끝없이 시달리는 조국 이탈리아를 구제할 길이 무엇인가를 골똘히 생각했습니다. 위대한 영도자의 고독한 결단, 이것이 그의 해법이었습니다.
그래서 사자의 용맹과 여우의 지혜를 갖추고 조국의 발전을 위해서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 것을 간언했지요. 국가를 위해 희생할 각오가 돼 있는 지도자라면 세상의 논평이나 비난을 두려워해서는 안됩니다. 윤리나 도덕의 힘만으로는 정치를 바로 세울 수 없기 때문입니다. 뭐니뭐니 해도 힘이 있어야 합니다. 민심을 얻어야 천하를 얻는다? 아닙니다. 천하를 얻으면 민심은 절로 따라오게 돼 있습니다. 지금은 난세입니다. 마키아벨리의 말을 믿고 끝까지 밀어붙이세요.
마키아벨리가 ‘진정한 군주라면, 제대로 된 국가라면’ 먼저 국민의 지지를 구해야 한다고 덧붙인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이 복잡한 시대에 골치 아픈 이론을 다 꿸 필요는 없습니다. 거두절미하고, 자기에게 유리한 것만 발췌해서 써먹는 것이 신지식인의 표상 아닙니까. 그러니 역시 신경 쓰지 마세요.
한 말씀 더 올린다면 각하, 노벨평화상의 족쇄에서 벗어나세요. 그런 엄청난 상을 받았으면 무엇인가 달라져야 하지 않느냐는 세평에 발목잡혀서는 안됩니다.
평생을 민주주의를 위해 싸워 온 의인이라는 칭찬에도 혹하지 마세요. 민주주의 해가면서 개혁을 어떻게 합니까. 의인은 고향에서 외로운 법, 역사와 대화하면 됩니다.
▼국민지지 신경쓰지 마세요▼
그런데 각하, 민심을 무시하고 민주주의를 욕보이며 정권 재창출이 가능할 것 같으냐, 지성을 등진 권력이 오래갈 것 같으냐고 학자들이 이구동성으로 떠드는 것, 솔직히 마음에 걸리기는 합니다. 그러나 각하, 이번 기회에 아예 정치학 교과서를 새로 써봅시다. 민심을 잃고 정도를 버려도 권력은 영원할 수 있다는 것을 한번 보여줍시다. 어차피 인생은 도박 아닙니까.
서병훈(숭실대 교수·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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