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주한미군 용인 한미 시각차▼
한국 정부는 남북정상회담에서 이룬 성과의 하나가 주한미군에 대해 김 위원장이 용인하는 발언을 이끌어낸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 문제에 대해 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이 빈번하게 언급했을 뿐만 아니라 발언 내용도 초기의 신중한 표현에서 점차 확대된 해석으로 이어졌다.
미국측은 이 문제에 대해 비상한 관심과 우려를 가지고 주시해 왔다. 이 문제에 대한 한국 정부의 진의와 대응 방식에 대한 미국측의 인식이 오늘의 한미간 불협화음과 불신감 형성에 상당한 영향을 끼쳤다.
3월 방미시 김 대통령은 북한이 변화하고 있다는 하나의 증거로 김 위원장의 주한미군 용인설을 다시 전개했다. 그런 해석이 미국 정부에 설득력이 있다고 판단했다면 한국 정부의 상황 판단에 상당한 문제가 있다고 볼 수 있다.
김 위원장의 주한미군에 대한 시각은 어떤 것일까. 미국측의 인식에 의하면 주한미군의 기능은 북한의 대남 무력 침공에 대한 억지력이 되는 것이며 만일 억지력이 발휘되지 못하여 전쟁이 발발하면 한국을 방위하는 사명을 수행하게 된다는 것이다. 즉 잠재적으로는 북한과의 적대관계나 교전상태를 상정하고 있다.
그러한 기본적 성격을 가지고 있는 주한미군의 계속적인 주둔을 북한의 어느 지도자가 용납하는 발언을 하겠는가. 북한의 이데올로기로 비춰보나 정치 군사적 이익을 고려할 때 주한미군 철수는 북한에는 해결해야 할 가장 기본적인 문제가 될 수밖에 없다. 이는 북한 체제의 존립이나 정치적 정통성에 직결되는 문제다.
김 대통령이 전하는 김 위원장의 주한미군 관련 발언은 미국과 북한의 적대관계가 해소된 상황을 전제로 했을 것이라고 생각할 수는 있다. 미국과 북한이 평화 협정을 체결하고 국교가 수립된 상태에서 미군이 평화유지군으로서 국제 감시단의 일원으로 주둔하는 것을 용인할 수 있다는 것이라면 있을 수 있는 발언이다.
만일 김 대통령이 미군의 평화유지군 전환에 대해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이러한 구상에 대해 김 위원장이 유연성 있는 발언을 했다면 가능할 수는 있다. 그러나 평화유지군으로서의 개념은 한미 군사동맹이 종식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한국 정부의 설명은 마치 현재와 같은 성격을 가진 주한미군을 북한이 용납한다는 것과 같은 인상을 주기도 하는데 이는 한미 양국 국민에게 잘못된 이해를 가져다 줄 수 있다.
북한의 언론 매체나 외교관들은 주한미군 철수를 일관되게 주장하고 있다. 반면 북한 지도층의 침묵은 한국 정부가 언급하고 있는 내용이 자신의 이익에 합치된다고 보기 때문일 것이다.
김 위원장의 처지는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첫째, 북한이 철수를 요구해도 미국이 응하지는 않을 것이다. 둘째, 미국이 필요하다고 느끼고 원할 때 주한미군을 철수시킬 것이다. 셋째, 북―미 관계개선 등 여러 조건이 충족돼 미군이 자진해서 철수하도록 하는 정책이 유효하다. 넷째, 전방위 외교를 전개하고 있는 시점에 주한미군 철수를 소리 높여 주장하는 것보다는 한국 정부로 하여금 북한의 신축성을 알리도록 하는 것이 현명하다고 판단하고 있을 것이다.
▼외교역량 제고방안 마련 시급▼
미국 방문 전과 한미정상회담 이후 김 대통령의 발언에서 많은 차이를 볼 수 있는데 이는 한국 외교정책의 결정과 집행과정에 관해 많은 문제점을 시사한다. 미국 정세에 대한 오판, 정책에 있어서 혼선과 모순, 그리고 불안정 등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대미 정보수집과 분석 능력의 결함으로 인한 것인가, 아니면 자료를 접하는 지도층의 자질 문제인가. 정책의 타당성에 대한 자만과 과신, 이질적인 분석에 대한 관용과 평가 능력의 부재가 문제인가. 여러 복합적인 요인들이 작용했을 것이다.
정상회담 후 준비과정에 참여한 여러 부처들의 오판과 안이한 판단이 드러났을 뿐만 아니라 세계 언론에 한미간 정책조율의 난항과 한국의 대북정책 좌절이란 이미지가 노출돼 한국의 외교 이익에 부정적으로 작용했다. 한국 외교 역량의 성숙도를 높이고 효율적으로 국익을 추구하기 위해 체계적이고 구조적인 개선방안을 모색해야 할 것이다.
김영진(미 조지워싱턴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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