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년대 운동권대부 최민씨-사회복지사 김정애씨 백년가약

  • 입력 2001년 4월 18일 18시 39분


80년대 서울대 학생들 사이에서 최민(崔民·42)이라는 이름은 대단한 의미를 가지는 존재였다. 관악캠퍼스를 휠체어에 의지하고 누비던 소아마비 1급의 중증장애인. 카를 마르크스의 ‘자본론’과 ‘공산당선언’을 독일어 원전으로 번역했던 탁월한 학생운동 이론가.

그 최씨가 어느덧 불혹(不惑)을 넘어선 나이에 15년 연하의 신부를 맞이하게 됐다.

상대방은 장애인 인권운동을 펼치고 있는 사회복지사 김정애(金貞愛·27)씨. 99년 최씨가 회장으로 있던 서울 DPI(Disabled People International)에서 함께 일하게 된 것이 인연이 돼 2년여의 연애 끝에 22일 화촉을 밝힌다.

서울대 국사학과 78학번인 최씨는 80년대 중반 학생운동의 한 축이었던 제헌의회(CA)노선의 이론적 기초를 마련했다. 그 후 87년 CA그룹 사건에 연루돼 2년간의 옥살이를 했으며 90년에는 혁노맹사건의 배후로 지목돼 수배생활을 하다 또다시 구속되는 대신 ‘한국을 떠나라’는 안기부의 요구를 받아들여 미국 유학 길에 올랐다. 이때 전 국무총리인 이수성(李壽成)교수와 백낙청(白樂晴)교수가 보증을 해준 일화는 유명하다.

미국에서 정치경제학을 공부한 후 98년 귀국한 최씨는 장애인 인권운동 등 활발한 사회활동을 펼치고 있다.

최씨는 현재 사회복지법인 ‘장애인의 꿈 너머’ 대표이사, 장애인 고용기업인 ‘OPEN SE’ 대표이사, 386세대 주축의 신정치운동 모임인 ‘제3의 힘’ 운영위원장 등 10여개의 직함을 갖고 있다.

15년의 나이 차를 어떻게 극복했느냐는 질문에 그는 “80년대에 내가 벌인 반독재민주화운동이 그 시대의 사회변혁운동이었다면 정애씨가 해온 장애인 인권운동은 바로 지금 시대가 원하는 운동”이라며 “따라서 정애씨와 나는 가치관이 비슷한 같은 세대라고 해도 무방하다”고 말했다.

한신대와 가톨릭대 대학원 사회복지학과를 졸업한 신부 김씨도 “많은 얘기를 통해 살아온 배경이 다른 사람들에 대해 최민씨의 배려가 깊은 것을 알았다”며 “나이 차는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고 화답했다.

<민동용기자>mind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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