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롯데호텔로 와서 식사를 같이 했다. 닥터 그릴로는 아주 맛있게 먹었다. 나는 원래 소식(小食)이다. 대신 담배를 계속 피웠다. 닥터 그릴로가 빨간 능금을 물컹 물어뜯어서 아작아작 씹는 것이 부러워 “맛있느냐”고 물어봤다. “맛있다”고 했다.
“어떻게 하면 그렇게 맛있게 먹을 수가 있느냐?”
“비법을 가르쳐 줄까? 당신은 공항에서 만났을 때부터 지금까지 계속 담배를 피우고 있더군. 그게 모든 음식의 맛을 뺏어가버려. 아마도 당신 기관지는 타르로 새까매져 있을 걸….” 놀라는 나를 보고 그는 잔인하게 덧붙였다. “죽어, 죽는다고….” 그가 한국에 있는 동안 적어도 그 앞에서는 담배를 물지 않도록 노력했다. 그리고 그가 떠날 때 약속했다. “내가 만약 2개월 동안 담배를 안 피우게 되면 편지를 하리다.”
세월이 갔다. 좀처럼 실행이 안되었다. 골프를 치면서도 한 홀을 끝내면 자연스럽게 담배를 물곤 했다. 심하게 가래가 끓는다. 가래를 뱉을 때 집사람은 욕을 바가지로 했다.
한밤중 혼자가 되면 이 세상 모두가 내 것이다. 쓸 것이 있을 때 자연 담배에 불을 붙인다. 쓰는 일이 잘 나갈 때는 계속 담배를 빤다. 잠깐 책상머리에 불붙은 담배를 놓고 한참 가다 보면 또 다른 담배를 물고 있다.
하루의 소비량 두 갑 내지 세 갑. 골프 라운딩 중 캐디가 왜 양담배를 피우느냐고 묻는다. “응, 미국 아이들이 우리 차를 사준다는데 그 보답으로….” “응, 인체에 해롭다고 해서 나만이라도 열심히 태워서 없애려고….”
그러나 비상이 걸렸다. 가래가 계속 끓고 숨이 가빠져 모처럼 의사한테 갔더니 폐결핵이라고 했다. 부지런히 X레이를 찍으며 담배를 삼갔다. 약은 독했다. 한 달 먹고 나니 기진맥진이다. 이때 친구 하나가 충고했다. “결핵은 영양부족에서 오는 것이니 맛있는 것 다 먹어라. 돈은 내가 대줄 테니까.” 보신탕도 먹었다. 기운이 났다. 그저 먹는 것에만 신경을 썼다.
어느 날 의사를 찾아가 더 이상 약을 안 먹겠다고 했더니 “큰일납니다. 나중엔 지금의 두서너 배를 먹어야 됩니다”고 했다. “당신께서 주는 약은 독이야. 나는 자연사를 택하겠어….” 비장한 각오 하에 운동도 조금씩 시작했다. ‘자연사’ 그렇다. 나이 팔십이 다 되어서 무슨 장수를 생각해. 가만히 보니까 젊음이 인생의 꽃이야. 꽃이 지고 열매가 됐으니 떨어질 날이 있을 것. 자연에 살자. 저 나무들처럼 생명 있는 모든 것과 마찬가지로.
이 철학이 굳어지면서 죽음이라는 것에 대한 공포가 서서히 자취를 감췄다. 그러나 어느 날 담배를 사놓고도 딱 외면하는데 성공했다. 뜻밖에도 몇 달 동안이나 입맛이 생기고, 걷는데도 힘이 안 들었다. 지하철의 높은 계단을 오르내릴 때 체력의 정도를 감지하게 된다. 한 반년 그렇게 견디다 보니 납작하던 아랫배가 볼록 나오기 시작했다. 그러나 쓰려고 해도 번쩍이는 인스피레이션이 없다. 몸이 실해진 대신 혼이 행방을 감추었다. 슬그머니 담배를 물어보았다. 망설이다가 불을 붙였다. 계속해서 피우게 되었다.
금연을 부르짖고 건강에 좋다는 짓은 모조리 흉내내던 어떤 친구가 “너 죽어. 그 버릇, 왜 못 고쳐”를 인사말처럼 하더니 입원하여 몇 달 안 가서 세상을 떴다. 큰 수술을 받았었다. 나는 영안실에 걸려 있는 그의 사진을 한참 동안 응시했다. 그리고 밖으로 나와서 담배 한 대를 피워 물었다. 연기가 밤하늘로 살며시 사라졌다.
러시아의 장수촌을 찾아간 일본 사람이 대문 앞에 앉아서 담배를 뻐끔거리는 노인에게 나이를 물었다. 백살이라고 했다. 술 담배 해롭다고 야단인데 어떤 사람들에겐 살아 있다는 증거이기도 한 모양이다.
결국 나는 살아 있는 동안에 닥터 그릴로한테 편지 띄울 기회는 없을 것 같다. 매일 술도 마시니까. 닥터 그릴로 미안!
한운사(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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