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친구의 딸에게 지구본을 선물하면서 우리나라를 찾아보라고 했다. 초등학생인 이 꼬마는 한참을 헤매더니 힌트를 달란다.
"태평양 근처야."
"태평양이요? 아, 찾았다. 그 다음에는요?"
"이제 중국을 찾아봐."
"아, 여기 있어요."
"바로 그 오른쪽에 있는데…"
어렵사리 아시아 끝에서 한국을 찾아낸 순간, 이 아이는 자신의 나라가 너무 작다는 사실에 놀랐다. 내가 바라던 순간이기도 했다. '세계화'의 첫걸음은 세계지도를 통해서라고 믿기 때문이다.
바로 내가 그랬다. 어렸을 때부터 내 최대의 놀이감은 세계지도였다. 부모님은 집안 어딘가에 늘 세계지도를 붙여놓으셨다. 지구본 저금통, 세계지도 식판은 물론, 티셔츠나 점퍼도 세계지도가 그려진 것들을 부지런히 사오셨다. 나는 언니들의 세계지도부도를 성경책인양 끼고 다녔는데, 수업시간에 쓴다고 달라고 해도 막무가내로 싫다고 해서 많이 얻어 맞았다.
아버지와 주로 하는 놀이도 지명찾기였다. 뉴욕이나 시드니같이 빨간 글씨로 된 도시를 찾는건 너무 시시했다. 깨알보다 작은 글씨로 쓰인 에티오피아의 오모강이나 파키스탄의 낭가파르밧 산도 순식간에 찾았으니까. 그래서였을 것이다. 초등학교도 들어가기 전에 엉성하게나마 손수 그린 세계지도를 내 방에 붙일 수 있었던 것은.
내가 '걸어서 지구 세 바퀴 반'을 돈 것도 순전히 세계지도 덕분이라고 할 수 있다. 어느 날, 대륙들이 모두 붙어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깜짝 놀라서 아버지에게 물었다.
"아버지, 이렇게 땅이 다 붙어있으니까, 걸어서도 지구 한바퀴 돌 수 있겠네요?"
"물론이지. 너 이담에 크면 한번 해 볼래?"
"네, 꼭 한번 해볼래요."
그 후에는 세계지도와 더욱 친해졌다. 언젠가 내발로 지구를 걸어보겠다는 꿈이 있었으니까.
중학생이 되어, 본격적으로 세계지리를 배우면서 우리나라 땅이 얼마나 작은지, 또 얼마나 답답하게 놓여있는지 알게 되었다. 커다란 바다에 접해 있지만 바로 아래 일본이 떡 버티고 있고, 위로는 북한이 있으니 옴짝달싹 못하는 형상이다. 이런 생각에 부채질을 한 것은 미국인 선교사의 집에서 본 세계지도였는데, 그 지도는 내가 수없이 보던 것과는 전혀 달랐다. 세상에! 지도 중심에는 한반도 대신 미 대륙이 있고, 한국은 오른쪽 맨 끝에 쳐박혀 있질 않는가. 갑자기 지구 후미진 구석에 깊숙이 갇혀있다는 느낌이었다.
'이런 나라에서만 산다는 건 정말 답답해. 바다로 나가던지 대륙으로 뻗지 않으면 살 수가 없겠어. 그래, 나중에 크면 베이스캠프는 한국이지만 저 넓은 땅과 바다를 몽땅 내 무대로 삼아야겠다.'
지금도 이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그리고 '어린 한국인'들도 이런 생각을 가지고 살았으면 좋겠다는 바람으로 기회가 있을 때마다 세계지도를 사주는데, 아이들이 한국을 찾아내고는 그 크기에 실망하는 순간, 잊지 않고 해 주는 말이기도 하다.
지금 당장 세계지도를 찾아보라. 옆에 지구본이 있다면 한 번 돌려보라. 한 바퀴 돌아가는데 몇 초도 걸리지 않는다. 이렇게 작고 좁은 지구지만 우리는 단 한 발짝도 우주로 나가 살 수 없다. 겨우 38만㎞ 밖에 떨어지지 않은 달조차 마음대로 다닐 수 없다. 죽으나 사나 지구 안에서 살아야 한다. 그야말로 '튀어봐야 지구 안'이다. 그러니 그 안에서라도 두 날개를 활짝 펴고 살아야 마땅하지 않겠는가.
세계가 활동 무대라고 생각하면 한국에 살면서도 전 세계를 껴안을 수 있다. 정보통신, 교통의 발달이 가져온 물리적인 세계화가 아니라, 정말 우리가 세계의 일부이자 전부라는 정신적인 세계화를 누리면서 말이다. 한국 땅이 아시아 대륙으로, 전 세계로 이어지는 것처럼 우리의 관심과 생각과, 그 생각의 실천 역시 세계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믿기 때문이다. 이런 자기 위치 에 대한 이해와 확신이야말로, 영어회화나 해외여행보다 훨씬 중요한 세계화 과정이다. 아니, 그 무엇보다도 우선 되어야 할 과정이다.
이 과정이 세계지도 한 장에서 시작된다니, 참으로 신기하지 않은가.
한비야(여행가·난민구호 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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