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하며 생각하며]이운세/'6·25 상처'남의 아픔 인가요

  • 입력 2001년 6월 26일 18시 42분


1952년 10월19일 중부전선 저격능선에서 중공군과의 격전 중 전사한 하흥식님은 매일 어김없이 가족의 일상을 보고받는다. 서울 용산구 용산동 전쟁기념관에 있는 그의 이름이 새겨진 전사자 명비 앞에서 그의 아들 하종일씨는 오늘도 가족 모두가 별고 없이 잘 있다는 인사와 함께 며칠 있으면 군에서 휴가 나오는 손자에 대한 특별한 뉴스를 전했다.

전쟁기념관에서 전시운영실장을 맡고 있는 하씨에게 전쟁은 매일 매일 살아 있는 현실이다. 며칠 전 서울 중곡동에 사는 박정분 할머니(87)가 6·25전쟁 당시 전사한 아들 송명헌님을 추모하는 현장을 보면서 그는 살아 계셨으면 할머니 나이가 됐을 전사한 아버지를 생각하며 눈물을 훔쳤다. 아흔을 바라보는 할머니가 내가 죽으면 이 아들의 이름을 누가 찾아보고 기억해 주겠느냐며 하루종일 앉아 있는 모습을 보며 하씨는 살아 있는 자의 의무를 다시 생각한다.

부모가 자식을 잃고, 자식은 부모를 잃고 수십년이 지나도 그리워하며 통곡하는 것이 전쟁이다. 절망 속에서 살아남은 자의 일상도 가혹했다. 그러나 피란길에 먹은 음식들이 건강식이 되고, 별식이 되고 있는 오늘, 사람들은 반세기 전의 일을 더 이상 현실로 말하지 않는다. 1592년 임진왜란을 겪은 지 44년 만에 다시 병자호란의 참화를 겪은 것을 생각하면 50년의 세월은 모든 것을 잊을 수 있는 세월인지 모른다. 정말로 그렇기 때문인지 6·25전쟁은 점점 이산가족과, 참전용사와, 남의 나라에 와서 목숨을 바친 유엔군 전사자 가족만의 기념일이 되어가고 있다. 유엔 참전국 주요 인사들과 참전용사들이 전쟁기념관에 있는 유엔군 전사자 명비를 보고 크게 감동해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감사를 표시해 올 때마다 우리는 누가 누구에게 감사해야 하는지를 혼동하며 세상에는 잊어야 할 것이 있고,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있음을 다시 확인한다.

지난 1년 동안 50만명의 학생과 20만명의 외국인, 30만명의 가족단위 관람객이 전쟁기념관을 찾았다. 하지만 이들 개개인이 기억하고 느끼는 6·25전쟁은 세월의 변화를 절감케 한다. 학생들은 호국추모실이나 6·25전쟁 때 전사한 분들의 명비를 통해 나라사랑이라는 명제를 가르치려는 선생님들 손에 이끌려 기념관을 찾지만 그들에게 전쟁은 이데올로기가 사라진 먼 옛날의 이야기일 뿐이다. 마찬가지로 20대도 전시 공연 영화와 같은 문화적 코드를 통해서나 전쟁을 접하고 기념관을 찾는다.

가족단위로 주말 여가생활을 위해 기념관을 찾는 30, 40대들에게 6·25전쟁은 자라면서 귀에 딱지가 앉도록 들어온 익숙한 주제이자 내용이면서 매일 신문에 한 꼭지 이상은 등장하는 북한문제와 연루돼 끝나지 않는 전쟁으로 인식은 하면서도 관심을 갖고 싶어하지 않는 현실이다.

그러나 50대 이상 장노년층은 6·25전쟁 관련 전시물 속에서 자신들의 젊은 날을 발견하고 눈물지으며 처절한 생존 현장에서 살아남아 이렇게 풍요롭고 평화로운 일상을 누리며 사는 것을 감개무량해 한다.

외국인들은 국제적 뉴스가 됐던 남북정상회담의 배경을 이해하고, 아직도 전세계에서 유일한 분단국가로 남아 긴장상태를 유지하고 있는 한국의 아픈 과거에서 일종의 비극적 카타르시스를 느낄 수 있는 관광명소로 기념관을 찾는다.

이렇듯 전쟁은 계층에 따라 다양한 시각으로 조명되지만 기념관을 찾는 어느 계층의 어떤 사람도 전쟁을 옹호하는 사람은 없다. 몇 세대가 지나도 치유되지 않는 참혹한 전쟁에 대해 두려워하고 분노하며, 그 전쟁을 극복하고 이룩한 평화의 소중함에 대해 감사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6·25전쟁이 끝난 지 51년, 이제 또 다시 세대를 막론하고 전쟁은 점점 우리와 상관없이 현실과는 먼 남의 얘기로 인식되고 있다. 과연 전쟁은 우리와 상관없는 현실인가?

초등학교 3학년 이신혜 어린이가 전쟁기념관 전시물을 보고 6·25전쟁 당시 피란가는 어린이의 심정을 시로써 생생하게 재현해 놓은 글은 평화시대의 이 아침 우리가 무엇을 생각하며 살아야 할 것인지를 가슴으로 전하고 있다.

‘전쟁기념관에서 피로 물든 피란길을 보았다/무서운 폭탄, 무너진 다리/보따리 싸매고 마을을 떠난다/갈수록 멀어지는 우리 집/엄마 우리는 어디로 가나요.’

김선택(한국납세자연맹 회장, 전 삼일회계법인 삼일총서집필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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