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인은 1946년 서울지검 검사로 임명된 후 해방과 6·25전쟁 전후의 각종 좌익사건을 맡아 좌익세력 척결에 앞장섰다. ‘반공검사’라는 유명한 별명은 그 당시 붙여진 것.4·19혁명 직후 당시 여당인 민주당이 이 같은 전력을 문제삼아 ‘오제도검사 파면동의안’을 국회에 제출하자 사표를 내고 변호사 사무실을 열었다. 고인은 개업 후에도 ‘반공변호사’로서 66년 한국반공연맹 이사, 71년 북한연구소 이사장, 75년아시아반공연맹(APACL)과 세계반공연맹(WACL) 한국수석대표, 78년 사단법인 한국안보교육협회 이사,98년 ‘헌법을 생각하는 변호사 모임’ 고문 등을 맡았다.71년에는 월간지 ‘북한’을, 지난해에는 월간 ‘사상 21세기’를 창간해 우익의 목소리를 대변해 왔다. 독실한 기독교 신자였던 그는 교회 장로로 있으면서 ‘북한탈출동포돕기 운동본부’를 운영하기도 했다. 지난 겨울 빙판길에 넘어져 치료를 받아왔으며 최근에는 폐렴까지 겹쳤다.
유족으로는 미망인 한석주씨(82)와 영찬(53·월간 사상21세기 발행인) 봉찬(50·우영산업개발 대표) 병찬씨(45·동양증권 상무) 등 3남 3녀.
<신석호기자>kyl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