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은 이날 오전 한광옥(韓光玉) 대통령비서실장과 박지원(朴智元) 대통령정책기획수석비서관, 박준영(朴晙瑩) 대통령공보수석비서관을 빈소로 보내 유족들을 위로했다.
이들은 유족에게 “김 대통령도 고인의 소식을 접하고 충격을 받았다”며 위로의 말을 전했다.
이한동(李漢東) 국무총리도 전날에 이어 다시 빈소를 찾았다.
○…민주당 한화갑(韓和甲) 최고위원, 박상규(朴尙奎) 사무총장, 전용학(田溶鶴) 대변인, 장성민(張誠珉) 의원 등과 함께 빈소를 찾은 김중권 대표는 헌화 후 접객실로 자리를 옮겨 김병관 명예회장에게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라며 위로했다.
이에 김 명예회장은 “그나저나 나라가 잘 돼야 할 텐데…”라며 “김 대표가 국민을 위해서 중요한 역할을 해줘야 합니다”라고 당부했다.
김 명예회장은 또 김 대표와 박 총장에게 “남북으로 찢기고, 내편 네편으로 갈리고, 동이면 동, 서면 서로 갈가리 찢어져서야 나라가 되겠습니까”라고 말하기도 했다.
○…자민련 김종호(金宗鎬) 총재대행, 이양희(李良熙) 사무총장, 이완구(李完九) 원내총무, 원철희(元喆喜) 정책위의장, 변웅전(邊雄田) 대변인, 송영진(宋榮珍) 정진석(鄭鎭碩) 안대륜(安大崙) 의원 등과 함께 빈소를 찾은 김종필 명예총재는 방명록에 ‘謹弔 金鍾泌 哭(근조 김종필 곡)’이라고 쓴 뒤 침통한 표정으로 분향했다.
접객실에서 오명(吳明) 동아일보 회장이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어려울 때 많이 도와주셨는데 이렇게…”라고 인사하자 김 명예총재는 “뭐라고 위로해드려야 할지 모르겠습니다”라고 답례한 뒤 동행한 김 대행 등을 가리키면서 “모두들 침통해 하고 있습니다”라고 전했다.
김 명예총재는 언론사 세무조사와 관련해 “탈세 부분은 받는(추징하는) 걸로 하고, 사주 구속 등 나머지는 하지 않는 게 좋겠다고 대통령께 말씀드렸다”고 말하기도 했다.
김 명예총재는 이후에도 10여분간 자리를 뜨지 않고 “얼마나 충격이 크시겠어요” “가시는 분 가시더라도 남은 분이라도 잘 돼서 마음놓고 다시 해야 할 텐데…” “이런 경우를 보면 사람 운명이라는 게 허무해요” “졸지에 불행을 맞으니 얼마나 공허하시겠어요”라며 유족을 거듭 위로했다.
○…한나라당에서는 최병렬(崔秉烈) 이환의(李桓儀) 부총재, 김만제(金滿堤) 정책위의장, 김덕룡(金德龍) 이상득(李相得) 손학규(孫鶴圭) 신경식(辛卿植) 신영균(申榮均) 정인봉(鄭寅鳳) 남경필(南景弼) 의원, 이웅희(李雄熙) 전의원 등이 빈소를 찾았다.
○…정관계에서는 신건(辛建) 국가정보원장과 임동원(林東源) 통일부장관, 장재식(張在植) 산업자원부장관 김한길(金漢吉) 문화관광부 장관 등이 조문했다.
또 유창순(劉彰順) 현승종(玄勝鍾) 이수성(李壽成) 전 국무총리, 권오기(權五琦) 전 통일부총리, 이용만(李龍萬) 전 재무부장관, 김종인(金鍾仁) 전 대통령경제수석비서관, 이연택(李衍澤) 2002년 월드컵조직위원회 공동위원장, 정몽준(鄭夢準) 대한축구협회장 겸 국제축구연맹(FIFA) 부회장 등도 조문했다.
○…언론계 인사로는 조선일보 방상훈(方相勳) 사장, 안병훈(安秉勳) 부사장, 김대중(金大中) 주필과 조희준(趙希埈) 넥스트미디어홀딩스 회장, 이동욱(李東旭) 전 동아일보 회장, 남시욱(南時旭) 전 문화일보 사장, 전만길(全萬吉) 대한매일신보 사장, 홍두표(洪斗杓) 전 KBS사장, 강동연(姜桐連) 한국방송광고공사 사장, 현소환(玄昭煥) 전 연합통신사장 고스게 고이치(小菅幸一) 아사히신문 서울지국장 등이 빈소를 찾았다.
○…교육·문화·법조계에서는 김정배(金貞培) 고려대총장, 이준범(李準範) 전 고려대총장, 김중순(金重洵) 한국디지털대학(KDU)총장, 신일철(申一澈) 고려대 명예교수, 이종석(李種奭) 한국문화정책개발원장, 박정훈(朴正薰) 원불교 서울교구장, 이종상(李鍾祥) 서울대교수, 이용훈(李容勳) 전 대법관, 이종왕(李鍾旺) 김종훈(金宗勳) 변호사 등이 조문을 했다.
▼故안경희여사는…평생 가정-가문 헌신 전형적 '현모양처'▼
14일 타계한 안경희(安慶姬) 여사는 평생을 가정과 가문에 헌신해온 전형적인 현모양처였다.
이 때문에 주변에서는 일생 내조만 하며 살아온 전통적인 한국 여성이 권력과 시대상황이 빚은 거친 세파에 희생양이 된 것 아니냐며 안타까워하고 있다.
경남 밀양의 전통 있는 유교 집안에서 6남매 중 장녀로 태어난 고인은 대학에서 약학을 전공한 뒤 24세 때 당시 경성방직에 근무하던 김병관 동아일보 명예회장과 결혼했다.
명문가로 꼽히는 인촌 김성수선생 가문의 맏며느리였지만 안 여사는 일평생 사치를 멀리 하고 검소하게 생활해 왔다. 그런 안 여사로서는 이번에 국세청이 동아일보사 대주주인 김 명예회장 일가에 부과한 469억원이라는 세금 추징액이 상상할 수 없는 충격으로 다가왔을 것이라는 게 친지들의 이야기다.
일민미술관 관계자들은 “세법 규정의 자의적 해석과 부풀리기로 추징된 대목이 많으므로 법적 대응을 하면 된다”고 위로했지만 평생을 살림만 해온 안 여사는 좀처럼 충격에서 헤어나지 못했다는 것.
특히 안 여사는 자녀들에 대한 동아일보사 주식의 명의신탁과 관련해 친구와 친지들이 강도 높은 국세청 조사를 받는 등 유무형의 시달림을 당하게 되자 몹시 괴로워했다고 가족들은 전했다. 명의신탁은 97, 98년의 ‘비상장주식 실명전환 한시법’ 실시 이전에는 보편적으로 행해졌고 이 건은 80년대에 이뤄진 것이다.
안 여사는 93년 4월 동아일보가 석간에서 조간으로 전환할 당시 혼자 사찰을 찾아 3000배를 올릴 만큼 동아일보에 대한 애정이 남달랐다. 엄격한 유교교육을 받고 자라 명예와 자존심을 유달리 소중히 여겼던 안 여사에게 올 초부터 본격화된 일부 언론매체의 비방 공세는 감내하기 힘든 고통이었다고 한다.
이런 급작스러운 시련들로 인해 안 여사는 신경쇠약 증세를 보이기 시작했다. 특히 6월 말 국세청의 고발 조치 이후 건강이 급격히 악화되자 가족들은 세금문제보다 오히려 안 여사의 건강을 더 염려하며 입원을 시키려 했을 정도다.
안 여사는 96년 12월 동아일보사 광화문 구 사옥을 개보수해 개관한 일민미술관의 관장이라는 직함을 갖기 전까지는 대외 활동을 거의 하지 않았다. 어쩌다 외부 행사에 참석해도 앞에 나서기를 극구 사양하는 겸손한 성품이었다. 그러면서도 가정 내에선 항상 낙천적이고 쾌활한 안주인이었다고 가족들은 전한다.
안 여사의 사망 소식이 전해지자 청와대의 한 고위 인사가 15일 기자 브리핑에서 “오래 전부터 신경쇠약증에 걸렸던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지만 이는 사실과 전혀 다르다.
특히 지난해 차남을 결혼시킨 뒤에는 평소 남달리 조예가 깊었던 고미술 분야에 더욱 천착하고 주말마다 부부가 함께 운동이나 여행을 하는 등 활기찬 모습을 보여왔다. 친지들은 안 여사가 그처럼 섬세하면서도 모질지 못한 성품의 소유자였던 만큼 최근 일련의 시련에서 받은 충격의 강도가 컸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승재기자>sjd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