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관 동아일보 명예회장 퇴임사]

  • 입력 2001년 7월 27일 22시 20분


친애하는 동아 가족 여러분.

저는 지금 매우 비통한 마음으로, 다른 한편으로는 단호한 각오로 말씀을 전합니다.

원인과 경과를 차치하고, 동아일보가 지금 시련에 처한 데 대해 저는 무거운 책임감과 안타까움에서 벗어날 길이 없습니다.

일제강점기에 동아일보를 창간해 정간과 기사 삭제, 압수 등 갖은 탄압 속에서도 국가의 독립과 민족의 자존을 위해 헌신하신 창업주이자 조부이신 인촌 선생과, 해방 이후 자유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불굴의 의지로 독재 권력의 온갖 회유와 탄압을 이겨내시면서 동아일보를 키워주신 부친 일민 선생의 노력을 생각하면 후손으로서 선대를 뵐 면목이 없습니다.

또 동아일보를 민족의 신문으로, 한국의 대표신문으로, 세계적인 신문으로 성장하도록 피와 땀을 바쳐온 전 현직 동아가족에게도, 그리고 누구보다도 동아일보에 변함없는 기대와 애정, 믿음을 보내고 있는 독자들과 국민에게 심려를 끼치고 있는 데 대해 더할 나위 없는 송구스러움을 느낍니다.

임직원 여러분.

저는 지금 제 70 평생의 마지막 모든 것을 걸고 여러분께 말씀드립니다. 동아일보가 시련에 처한 현 상황에 대한 책임을 통감합니다. 이사직, 명예회장직도 내놓았습니다. 주주로서만 남겠습니다.

지난 33년 동안 몸담았던 회사를 떠나면서 만감이 교차합니다. 81년이란 동아일보의 긴 역사에서, 그리고 창업자 3세로서 온갖 영욕을 겪어왔지만 지금처럼 회한스러운 적이 없었습니다.

물론 궁극적인 책임은 저에게 있습니다. 그러나 국세청이 부과한 추징금과 공정거래위의 과징금, 검찰이 조사하고 있는 국세청의 고발 내용 중에는 억울하고, 부당한 부분도 많습니다. 최종적인 것은 사법적 판단을 구할 것입니다. 관행으로 행해 오던 법에 어긋나는 회계처리는 과감히 시정되어야할 것입니다. 제가 잘못한 부분에 대해서는 응분의 책임을 지겠습니다.

그러나 법률적 판단도 나오기 전에 저와 제 가족을 부도덕하고 파렴치한 언론사주로 매도하는 것은 물론이고, 정도 언론의 빛나는 역사를 가진 동아일보를 조직적으로 음해하며 궁극적으로 동아의 독자들마저 모독하는 우리 사회 일각의 행태에 대해서는 분노하게 됩니다.

이런 분위기에서 내자가 비극적으로 삶을 마감한 것도 결국은 저의 부덕의 소치입니다. 가족에 대한 사랑 못지 않게 동아일보에 대한 애정이 깊었던 아내의 죽음이 궁극적으로는 동아일보를 지키고 거듭 태어나도록 하기 위한 것이었다는 생각에 마음의 아픔을 견딜 길 없습니다.

동아가족 여러분.

동아일보는 반드시 위기를 이겨내고 도약해야 합니다. 저는 떠나지만 동아일보는 반드시 정상의 신문으로 다시 우뚝 서야 합니다.

이 나라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명운이 바로 여러분의 손에 달려 있다는 사명감으로 단합해 주십시오. 동아일보는 이 나라 자유민주주의의 보루입니다. 이 나라를 세우고 민주주의를 발전시켜온 진정한 자유민주주의 세력의 중심인 것입니다. 그것은 독자들과의 결코 변할 수 없는 약속이기도 합니다.

우리 동아일보는 민주주의를 짓밟는 일제와 독재권력에 대항해 영욕이 교차되는 역사를 겪으면서도, 꿋꿋이 언론의 사명을 훌륭하게 수행해 왔던 자랑스러운 역사를 갖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개혁과 합법이라는 이름으로 자유민주주의를 훼손시키려는 세력에 대해 엄정히 비판해 우리의 기본가치인 자유민주주의를 지켜야 합니다. 권력에 대한 견제와 감시라는 언론의 정도를 용기와 인내를 갖고 지켜야 합니다. 동아일보의 정체성도 이 같은 원칙에서 조금의 흔들림이 없어야 합니다.

애독자와 국민 여러분께 부탁드립니다. 동아일보는 여러분의 것입니다. 지금까지 보여주신 여러분의 성원에 정말 무슨 말로 고맙다는 말씀을 드려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앞으로도 질책과 함께 더 큰 성원과 격려를 보내주시기를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2001년 7월 27일 김병관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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