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행사는 국내외에서 도자기에 관심 있는 연인원 500만명 이상의 애호가들이 참여할 것으로 예상되는 도자(陶瓷) 대축제로 모처럼 도예 강국으로서의 한국의 면모를 내외에 드러내게 될 것이다.
벌써부터 많은 일본인이 이 도자기 축제에 관심을 보이고 있다는 소문이 들리는 것으로 볼 때 아마 해외 관람객들 중에는 일본인이 압도적으로 많지 않을까 생각된다.
이 도자기 축제가 어떻게 진행될지는 모르지만 적어도 일본인들은 이 축제를 통해 일본 도예의 뿌리를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계기가 되기에 충분할 것으로 기대된다.
일본 도예의 세 가지 흐름을 말할 때에 흔히들 꼽는 것이 사쓰마(薩摩) 도예와 가라쓰(唐津) 도예와 아리타(有田) 도예이다.
이 세 가지 도예 양식은 서로 확연하게 구분이 될 정도로 각각 다른 전통으로 이어져 내려오고 있다. 하지만 그것이 모두 조선 도공들에 의해 이룩된 것이라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400년이라는 세월이 흘렀어도 이 세 가지 일본 도예의 전통이 조선 도공들에 의해 세워졌다는 사실만은 일본인들도 부인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부인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사쓰마 도예의 심수관(沈壽官)이나 아리타 도예의 이삼평(李參平) 같은 도예가를 자랑스럽게 전면에 내세우기까지 하고 있다.
일본인들이 대도향(大陶鄕)이라고 부르는 아리타에 가면 그들이 조선 도공 이삼평을 얼마나 신격화하고 있는지를 한 눈에 알 수 있게 된다.
아리타 시내를 내려다 보도록 산 하나를 통째로 깎아서 거대하게 세워 놓은 도조 이삼평 비(陶祖 李參平 碑)에서부터 그가 처음으로 백자 광(鑛)을 발견했다는 이즈미야마(泉山)에 이르기까지 이 조선 도공이 눕고 앉은 자리를 모두 성역화해 놓은 것이다.
적어도 이삼평이 조선의 도공이라는 사실을 숨기려는 흔적 같은 것은 없어 보인다. 어찌 생각하면 일본에 끌려가지 않고 조선에 있었더라면 한낱 무명 도공으로 묻혀버렸을 그의 이름이 일본에 끌려갔기 때문에 빛을 발하였다고도 할 수 있는 것이다.
어쨌든 이 성역화 아래에서 인구 6만여명의 첩첩산중 소도시 아리타에만 무려 700여 호에 이르는 도자기 관련 가게들이 밀집해 있는 것이다. 그 중에는 15대, 16대를 예사로이 이어가며 가업으로 전통을 쌓은 가게들이 허다하다.
우리가 어렸을 적에 시집가는 누이들이 챙겨 가던 저 유명한 향란사(香蘭社) 도자기회사도 그 중 하나이다. 예컨대 이삼평과 조선 도공들로 인해 아리타는 세계적 도자 도시가 된 것이다.
아리타의 고란샤 도자기는 이삼평의 이름을 업고 우리들 누이의 혼수품으로 뿐만 아니라 유럽의 왕실에까지 팔려 가기 시작하여 세계 시장에서 중국의 징더전(景德鎭) 도자기를 무색하게 하였다. 정작 심수관이나 이삼평을 낳은 도조(陶祖)의 나라 한국에서는 손을 놓고 있는 사이에 말이다.
오늘날 김치를 받아들여 ‘기무치’ 상표를 붙여 세계에 팔아먹고 있는 것처럼 그들은 일찍부터 조선 도자기의 우수성과 아름다움을 알아보고 그 전통을 받아들여 사쓰마 야키, 아리타 야키로 세계적 상품을 만들어 냈던 것이다.
물론 아리타 야키든 기무치든 일본인들이 우리 것을 받아들여 세계적인 상품으로 만들었다고 해서 그것 자체를 놓고 시비를 걸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것들이 한국에서 온 것이라는 역사적 사실을 왜곡하거나 부인하지 않는 한 말이다.
곧 열리게 될 한국의 도자기 축제를 통해 일본인들은 일본 도자 역사의 어제와 오늘을 바라보게 될 것이다. 그리고 일본의 도자기가 한국 도자기의 영향을 받았다는 역사적 사실을 부인하지 않고 받아들이게 될 것이다.
사실에 입각한 이런 균형 있는 태도가 두 나라 역사를 바라보는 일본인의 전반적인 시각으로 확산되기를 기대해 본다.
김병종<서울대 교수·화가·본보 객원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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