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을 열며]서지문/참는 미국에 복이 있으리니

  • 입력 2001년 9월 16일 18시 37분


미국이 사상 최악의 테러를 당한 날, 기뻐 날뛰며 환호하는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모습을 보면서 정말 어떻게 저렇게 철이 없을까 하고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런 반인류적인 범죄, 가공할 만한 인명살상에 환호한다는 것도 한심했지만, 피할 수 없는 미국의 무시무시한 보복은 생각하지도 않고 그저 테러의 성공에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환호작약한다면 인류의 근시안적 가해와 복수는 인류의 역사와 함께 영원할 수밖에 없는 것이 아니겠는가.

▼과도한 응징 자충수될 수도▼

미국의 보복이 얼마나 두려운 것이면 카다피도 테러를 비난했고, 아라파트도 부상자들을 위해서 헌혈을 했고 북한까지 비난 성명을 냈겠는가. 아프가니스탄 정부도 처음에는 오사마 빈 라덴을 인도하겠다고까지 했다. 이 테러를 수년간 치밀하게 준비해서 자행한 테러리스트들은 그런 테러행위가 동족에게 도움이 된다고 생각했던 것일까?

그들도 미국이 반드시 보복하리라는 것, 특히 강경 노선의 조지 W 부시 대통령과 공화당 정부가 미국의 ‘위신’을 위해서 대대적인 보복을 단행하리라는 것을 몰랐을 리는 없다. 그러나 그들로서는 몇 배의 보복을 당한다고 하더라도 아랍인들이 두려운 존재라는 것을 과시해서 그들의 긍지를 회복할 수 있다면 보복을 감당할 가치가 있다고 ‘계산’했을 것이다.

물론 그것은 이성적인 판단이 아니다. 그러나 증오에 불타는 사람은 증오심의 충족에 막대한 가중치를 부과하게 되기 때문에 상식적인 손익계산을 할 수 없게 된다.

테러를 당한 미국도 당장은 이성적 판단이 마비될 수밖에 없다. 정치 지도자들이 냉철한 계산을 할 수 있다고 해도 미국의 위신도 고려하지 않을 수 없고, 국민의 분노에 대한 돌파구도 마련해야 한다. 그러나 미국이 과도한 응징을 해서 무고한 생명의 희생이 크고 세계경제가 압박을 받게 되면 미국에 동정적인 세계의 여론은 미국에 등을 돌리게 될 것이다. 그렇게 되면 미국은 실추된 위신을 만회하려고 더욱 힘을 과시하다가 베트남전의 과오를 되풀이하게 될 것이다.

이것이 바로 이슬람 민족주의자들이 바라는 시나리오일지도 모른다. 유럽과 아시아가 미국에 등을 돌린다면 미국은 아프가니스탄의 험준한 산악에서 베트남전에서보다 몇 배 능가하는 엄청난 국력을 소모하고 내부적으로도 갈등과 분열에 시달려서 강대국의 지위를 잃게되고, 그 과정에서 자유세계의 여러 나라가 동반 추락하게 될 수 있다.

인간의 모든 감정 중에서 원한처럼 맹목적이고 끈질긴 감정은 없다. 개인적인 원한은 아량을 기르고 관심사를 넓혀서 어느 정도 초월할 수 있지만 민족적인 원한에는 애국심, 정의감, 동포애, 그리고 공격적 본능이 덧씌워져 초월이 불가능하다. 그러나 이번 미국에 대한 테러에서 본 것처럼 한 쪽에는 정의의 심판이, 다른 쪽에는 반문명적 테러와 잔인무도한 인명살상이 되는 것이다.

어쨌든 공은 미국의 손에 넘어가 있다. 미국이 세계 경제의 중심이라는 상징이요, 미국의 자존심이라고 여기는 세계무역센터 빌딩이 그토록 무참하게 파괴되고 국방부 청사가 폭파당한 마당에 미국의 분노에 누가 공감하지 않겠는가. 그리고 미국은 그런 야만적인 테러를 당해도 속수무책이라는 인상을 줄 수 없으리라는 것도 인정하지만, 이때가 미국이 대국으로서의 풍모를 보이고, 현명하고 신중한 대응으로 세계의 신뢰를 회복하고 세계 도처에 팽배한 반미감정을 돌이킬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두 개의 불의가 정의를 만들지 않는다’는 금언이 있다. 미국에 대한 테러는 세계를 분노시켰지만 그렇다고 해서 미국의 무제한 보복이 용납되지는 않을 것이다. 수천년 나라 없는 백성으로 기막힌 설움과 박해를 받았고 나치 독일에 의해 1000만명의 동족이 말살당한 이스라엘도 조상의 땅인 팔레스타인을 강제 점령해 그곳에 뿌리내리고 살고 있는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추방하고 살상한 것을 용서받지는 못했다.

▼신중할수록 미국에 득▼

이번 참사 이후 미국인들이 보여 준 애국정신과 동포애는 감동적이었지만, 미국인들이 모두 현명한 애국자라면 미국 정부로 하여금 최대한의 자제심을 갖도록 하는 데 힘을 기울여야한다. 그리고 세계 여러 나라도 미국의 진정한 우방이라면 미국에 진심 어린 동정을 표하면서 보복에 신중하고 인도적이기를 촉구해야 할 것이다. 바로 오늘이 지구상 모든 나라의 미래가 좌우되는 엄숙한 역사의 순간이다.

서지문(고려대 교수·영문학·본보 객원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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