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씨는 20대부터 가업인 정미소를 운영하고 1943년 대동연탄을 창업, 한때 부산 최고액 납세자가 되는 등 사업적으로 성공했다. 그는 이어 1954년 제3대 국회 때 처음으로 원내에 진출한 이후 1980년까지 7선 의원을 지냈다.
정치를 하는 동안 야당만 한 그는 탄압도 많이 받았다. 1959년 5대 국회의원 선거 때 부정선거로 1만표 이상을 강탈당해 낙선한 뒤 법정투쟁 끝에 재선거에서 당선됐지만 엄청난 탄압이 이어졌다는 것. 정씨는 “부패권력은 엄청난 불법과 민주반역행위를 저지르고도 적반하장격으로 재선거가 끝나기가 무섭게 대동연탄 등 나와 관계된 기업체에 대해 세무사찰 등 탄압을 가하기 시작했다”고 회고했다.
정씨는 1965년에는 한일협정 비준안이 국회에 상정되자 굴욕적인 대일외교라고 항의하며 동료 8명과 함께 의원직을 사퇴하기도 했다. 정씨는 1979년 10·26 이후 ‘서울의 봄’이 오자 야당이 단결해야 또 다른 독재를 막을 수 있다고 호소하며 동분서주했다. 그러나 신군부가 등장하자민주화 완성의 꿈을 접고 28년간의 정치활동을 마감했다. 장남인 한나라당 정재문(鄭在文) 의원이 정씨의 뒤를 이어 12대 총선 때 당선된 뒤 5선 의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김차수기자>kimc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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