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차장 담을 끼고 잡초가 자라 있는 샛길을 빠져나가 ‘황오고분 7길’로 들어서니 골목 어귀에 있는 기와집 담 너머로 노랗게 익은 감이 늘어져 있다. 옆집 담 위로 보이는 무화과와 석류도 붉게 여물어 가는데 들판에선 벼가 익어가고 가을은 식물이 해산하는 계절이다.
▼나팔꽁 덮인 담, 지붕의 박꽃▼
골목 양편으로 집이 늘어섰지만 잔가지처럼 사이사이 샛골목이 나있고 샛골목집 대문 앞엔 파와 고추, 채송화를 심은 스티로폼 묘판도 놓여 있다. 요즘은 흔치 않지만 어릴 땐 갖가지 색깔의 채송화가 어느 화단가에나 꽃별처럼 깔려 있었다. 부용화가 늘어져 있는 담을 지나 막다른 골목집 앞에 서자 열린 대문 사이로 마당과 지붕이 보인다. 기와지붕에는 하얀 박꽃들이 아직 잠에서 깨어나지 않은 듯 잎을 여물고 있는데 박꽃은 호박꽃과 같은 과이면서도 격조가 있다. 내향성의 품격이랄까. 그런데 빨랫줄엔 웬 수건이 저리 많담. 청바지도 두 개 널려 있지만 노랑, 분홍, 연노랑 타월 열 개가 나란히 널려 있다. 하숙집일까. 안에서 기척이 들려 자리를 뜬다.
‘사글새 있습니다. 안집에 문희. 전화 742-××××.’ 낡은 철문에 붙어 있는 맞춤법이 엉망인 글씨를 읽다가 앞을 바라보니 ‘수궁용궁선녀’라는 간판이 눈에 들어온다. 집 앞엔 긴 대나무가 꽂혀 있다. 무속인의 집이다. 경주엔 아직 무속이 살아 있어 이런 옛 주택가에서 ‘산신동자장군’ ‘세존보살’ 같은 간판을 쉽게 볼 수 있다.
용궁선녀집을 지나니 담벼락에 붙어 있는 두 장의 종이가 눈에 들어온다. 두 장 모두 개 사진이 실려 있는데, 머리를 핀으로 묶은 개 사진은 컬러고 ‘개를 찾습니다’라는 제목 아래 이렇게 적혀 있다. ‘이름:애리, 품종:마르티스 흰색, 성별:암컷.’ 개 사진이 흑백으로 인쇄된 또 한 장의 종이에는 ‘제발 찾아주세요’라는 호소조의 제목 아래 이런 글이 적혀 있다. ‘5년 동안 가족처럼 키워온 강아지입니다. 하루하루 지나가는 게 괴롭습니다….’ 개 주인은 정말 애절하게 전화번호를 3개나 적어 놓았고 애리 주인은 광고지를 온 골목에 붙여 두었다. 나는 비정한 주인이구나. 나도 2년 전 개를 잃어버렸지만 겨우 하루 찾아다니고는 ‘잘만 살아다오’라고 기도하곤 잊었다.
좌우로 샛길이 나 있지만 곧장 앞으로 걸어가니 담벼락에 써 놓은 낙서가 눈에 들어온다. ‘신청훈 빠꾸리 변태.’ 계속 올라가면 시내로 이어지는 한길이 나올 것 같아 뒤돌아서 왼쪽으로 난 골목으로 들어선다. 이 골목 역시 곧지 않고 뱀허리처럼 굽어지는데 마주보이는 집 담벼락에도 낙서가 있다. ‘권도연 바보.’ 신청훈보다는 권도연이 낫지.
▼한국정서 가득한 경주 황오동▼
내가 즐겨 산책하는 경주시 황오동은 도심에 있는 주택가이지만 상상의 곡선 같은 미로의 골목길엔 산업화 이전의 순진한 한국 정서가 묻어 있다. 획일화된 아파트 문화는 우리의 심성까지 경직시켰지만 황오동의 무너진 고분에 올라가 선도산과 황남대총을 바라보면 메마른 땅에 싹이 돋아나듯 잃어버린 정감이 가슴에 되살아나는 듯하다. 군데군데 공터엔 잡초며 푸성귀들이 멋대로 자라 방치된 것처럼 보이기도 하는데 신축도 개축도 할 수 없는 문화재 보호구역이라 자연히 퇴락해 버렸다.
장기계획으로 시에서 이 지역의 땅을 매입한다니 몇 십 년 뒤에는 영원히 사라질지 모르는 풍경이 정겹고 소중하기만 하다. 황오동의 미로를 사랑하는 한 건축가도 보존을 바라지만 재산권을 행사할 수 없는 주민들의 불만은 크다. 전에 후배와 이 동네를 돌아다니다가 ‘재미있다’며 즐거워했더니 의자에 앉아있던 할아버지가 “뭐가 재밌노” 퉁명스레 나무랐다. 몸담고 사는 자의 현실과, 산책하는 자의 시각은 이렇게 다른가 보다.
강석경(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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