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프리즘]나희덕/지역축제는 상품판매장?

  • 입력 2001년 11월 27일 18시 29분


지방에서 살게 된 덕분에 지난 가을에는 그리 멀지 않은 지역축제 두세 군데에 다녀올 수 있었다. 반복적인 일상에서 잠시 벗어나 모처럼의 여유를 맛보며 각 지방의 독특한 자연과 풍물을 접할 수 있는 기회였다. 전남 함평의 산그늘을 온통 물들이던 무릇의 선홍빛이며 지리산 피아골의 단풍빛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그리고 소설 ‘토지’의 무대였던 경남 하동군 악양에 최참판댁이 새로 지어지고 그 마당에서 문화제가 열리는 것도 보았다.

이처럼 지방자치제실시 이후로 지역의 역사와 특색을 살린 다양한 축제가 계절마다 열리게 된 것은 문화의 중앙집권화가 심한 현실에서 일단 환영할 만한 일인 것 같다. 그리고 농사만으로는 더 이상 희망을 발견하기 어려워진 농민들에게 지역축제는 경제적으로도 적지 않은 보탬이 되었을 것이다. 실제로 올해 전북 무주의 반딧불축제에 37만명이 다녀갔다고 하고 충남 금산 인삼축제는 200억원의 경제효과를 발휘했다고 한다. 이 외에도 해를 거듭하면서 성공적으로 자리잡은 축제가 꽤 많아졌다. 이제는 축제도 유력한 문화상품이 되어가고 있는 셈이다.

▼官주도 급조… 주민참여 적어▼

그러나 해마다 지역축제의 수가 급증하면서 비슷한 내용의 축제들이 남발되고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적지 않게 들려온다. 여기저기서 축제는 수도 없이 열리는데 왜 우리의 생활 속에 축제다운 즐거움과 공동체적 정서는 회복되지 못하는 것일까. 이는 대부분의 행사가 관 주도로 이루어지면서 전시효과나 경제적 이익에만 급급한 채 주민들의 자율적인 참여가 부족하기 때문일 것이다. 축제란 원래 공동체의 구성원들이 함께 즐기고 연대감을 형성하는 마당이 되어야 한다. 그러나 내 짧은 경험에 비추어 본다면 지역주민들의 역할은 외지인에게 상품을 전시하고 판매하는 데 그치는 경우가 대부분인 것 같다.

또한 외적인 규모에만 지나치게 치중한 나머지 행정편의적인 발상이 엿보이기도 하고 문화적 내용의 전문성이 떨어진다는 인상을 받기도 했다. 예를 들어 사람들을 충분히 수용할 수 있는 시설을 갖추어 놓지 못했다든가, 자연미를 살려야 할 축제에 조악한 구조물이나 인공물들을 늘어놓는 경우 등이다. 전문가의 엄밀한 고증이나 조언 없이 내용이 구성되고 주체마저 불분명한 행사는 홍보나 경제효과는커녕 예산을 낭비하고 그 지역의 문화적 열악함을 드러내는 계기가 될 뿐이다.

지구 한 편에서는 전쟁으로 아비규환이고 국내의 정치판은 한심하기 짝이 없는데 한가하게 무슨 축제타령이냐고 할지 모르겠다.

그러나 제대로 소통하고 향유하는 문화적 토양이 있었다면 그런 폭력적 상황도 덜 일어났을지 모른다. 건강하게 발산되어야 할 에너지가 적절한 출구를 발견하지 못할 때 그것이 폭력이나 범죄로 표출되곤 하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축제는 온갖 싸움으로 얼룩진 사람들의 마음을 정화하고 치유하는 기능도 한다.

30여년 전 기노시타 렌조 부부에 의해 시작된 ‘히로시마 애니메이션 페스티벌’의 경우를 보자. 미국에서 애니메이터로 대성한 렌조씨가 고국에 돌아와 이 축제를 시작한 것은 제2차 세계대전 때 원폭이 투하된 히로시마의 평화를 기원하기 위해서였다고 한다. 개인이 만든 이 행사에 히로시마시는 초기에 약간의 재정지원을 해 주다가 페스티벌이 국제적으로 명성을 얻기 시작하자 지원을 늘렸고 나중엔 아예 행사 전체를 접수해 버렸다. 그러나 그 해 페스티벌에는 작품이 거의 출품되지 않았고 히로시마시의 공무원들은 페스티벌을 포기하기에 이르렀다. 결국 행사를 두세 달 앞두고 렌조씨 부부는 눈물겨운 노력을 기울여 행사를 재기시켰다고 한다.

▼애정-전문성 갖춘 행사돼야▼

이 사례를 통해서 보더라도 성공적인 축제란 돈이나 행정력으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그 분야에 대한 애정과 전문성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그리고 급조된 상품보다는 오랜 세월 그 지역만이 지니고 있는 문화적 자산들을 충분히 활용할 수 있어야 한다. 마지막으로 가장 중요한 것은 지역주민들이 축제라는 상품의 판매자가 아니라 향유자가 되어야 한다는 사실이다. 스스로 즐기지 않고 어찌 다른 사람을 즐겁게 할 수 있겠는가.

나희덕(시인·조선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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