겸재는 조선시대를 대표하는 화가 중의 화가요, ‘노송영지’는 그가 남긴 작품 중 열 손가락 안에 드는 걸작으로 300년 가까운 세월을 견뎌온 우리의 문화 유산이다.
▼문화유산 평가에 인색▼
부자들이 산다는 웬만한 아파트 한 채 값도 7억원은 한다. 고흐의 작품 한 점이 수백억 원에 거래되었다는 얘기는 뉴스거리도 아니다. 인도네시아의 대표작가 작품 한 점이 미화 100만달러를 넘어선 지도 오래다. 어느 나라든 자기 나라를 대표하는 작가의 작품 값은 엄청나게 비싸다. 국민의 정서일 수도 있고 자존심일 수도 있다. 누구도 여기에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다. 그런데 왜 선진문화 국민임을 자처하는 우리만 유독 우리 문화 유산에 대한 평가가 이리 인색할까. 자기 문화를 존중하지 않는 국가가 선진국 소리를 듣는 예를 본 적이 없다.
9월27일 서울옥션에서는 또 우리나라 근현대 작품 중 최고 낙찰가인 4억6000만원을 기록하면서 박수근의 ‘앉아 있는 여인’(3호)이 팔려 매스컴을 탄 적이 있다. 이 작품은 미국의 유명한 박수근 작품 컬렉터인 마거릿 밀러 여사의 소장품이었기에 더욱 특별한 의미가 있었다. 밀러 여사는 박수근이 국전에서조차 낙선하면서 하루하루 끼니를 걱정할 때 그의 작품을 높이 평가하고 사주었음은 물론 미국으로 돌아가서도 매달 50달러, 100달러씩 송금해 주면서 선생을 후원했던 분이다. ‘앉아 있는 여인’은 밀러 여사가 소장한 23점의 박수근 작품 중 21번째로 한국에 돌아온 작품이다.
물이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흐르듯 모든 재화는 제 대접을 받는 곳으로 흐른다. 박수근의 작품이 조국으로 돌아온 것은 조국에서 제대로 평가를 받았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보면 가끔 매스컴에 오르내리는 문화재 유출사건은 아직도 우리나라가 문화 후진국이라는 징표에 다름 아니다. 우리나라에서 제 대접을 못 받기 때문에 대접받는 곳으로 이동하는 것이다. 나는 해외에 유출된 우리의 문화재들이 언젠가는 박수근의 작품처럼 조국의 품으로 금의환향하기를 고대한다.
눈 밝은 컬렉터가 어떤 작품을 구입해 세월이 지난 후 그 작품이 높게 평가되고 이를 팔아 큰돈을 벌었다면 그 돈은 그의 안목에 대한 정당한 대가이며, 그는 존경받아야 한다. 또한 우리는 그가 좋은 작품을 소중히 보관해 후대에 물려 준 것에 대해 마땅히 감사해야 한다. 좋은 작품은 언젠가는 문화에 대한 식견을 가진 재력 있는 컬렉터를 만나 미술관에 자리잡게 마련이다. 서울옥션에서 낙찰된 ‘노송영지’도 이런 기나긴 여정을 거쳐 제 주인을 만나 현재 인천 송암미술관에 정착해 우리 모두가 감상할 수 있게 됐다.
컬렉터에 대한 우리의 시각은 어느 나라, 어느 시대에도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부정적인 게 사실이다. 한 나라의 미술문화 발전의 원동력은 컬렉터로부터 나온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간송미술관이나 호암미술관이 없었다면, 이 척박한 땅에서 과연 얼마나 많은 고미술품이 살아 남았을까. 또한 얼마 남아 있지 않은 우리의 문화유산들을 한 자리에 모아서 편하게 감상할 수 있는 복을 우리가 누렸을까.
▼왕성한 창작활동 후원자▼
컬렉터들이 미술품을 사서 돈을 벌고 못 벌고 하는 것은 우리의 관심사가 아니다. 그들이 있음으로 해서 작가들도 왕성하게 창작할 수 있고, 그들로 인해 귀한 작품들이 제 대접을 받으면서 소중하게 보관돼 우리나 우리 후손들이 쉽게 감상할 수 있다면 오로지 고마울 따름이다.
모든 재화의 거래가 그러하듯 어쩌다 있을 수 있는 부작용을 침소봉대해서 컬렉터들을 싸잡아 매도한다면 미술 문화의 발전을 위한 후원자 역할을 누가 맡겠는가. 미술 컬렉션의 최대 수혜자는 컬렉터가 아니라 결국 일반 대중이다. 미술문화가 건전하게 발전하기 위해서는 컬렉터에 대한 국민이나 당국의 시각이 바뀌어야 한다. 컬렉터들이 존경받는 풍토가 조성되어야 한다.
김 순 응(㈜서울옥션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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