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을 열며]최민/가깝고도 먼 이웃 중국

  • 입력 2001년 12월 23일 17시 57분


지난주 제3회 전주국제영화제 준비를 위해 베이징을 다녀왔다. 짧은 일정이었지만 중국 관계자들과 협의하는 과정에서 중국 영화의 현재 상황에 대해 들을 수 있는 기회가 몇 번 있었다.

여러 사람들이 중국 영화는 지금 과도기를 거치는 중이며 과거 제5세대 감독들이 국제적인 무대에서 화려하게 보여주었던 것과 같은 풍성함은 사라지고 볼 만한 작품도 많지 않다고 했다. 영화산업시스템이 자본주의적으로 변화하는 와중에서 일종의 침체기에 들어갔다는 말일까.

대화의 초점은 당연히 할리우드의 영화시장 개방 압력을 어떻게 막아낼 것인가 하는 데로 맞추어졌다. 중국의 영화인들은 한국 영화인들이 그 열악한 상황에서도 스크린쿼터를 꿋꿋이 지켜내고 국내 영화시장에서 자국영화 점유율을 ‘무려’ 40% 이상으로 끌어올릴 수 있었던 것에 대해 의아해하면서도 감탄하고 있었다.

국제무역기구(WTO) 가입으로 중국 영화인들이 현실적으로 고민하고 있는 문제는 매우 다양한 것 같았다. 물론 몇몇 사람들과의 단편적 대화만으로 과연 그들이 어떤 문제에 봉착하고 있고 구체적으로 어떤 대안들을 마련하고 있는지는 알 수 없었다. 다만 점차 영화산업의 자율성을 살리는 방향으로 나아가되 정부 통제의 끈을 쉽게 늦추지 않을 것이라는 점만은 분명해 보였다.

또 제작과 배급에서 민간 부문의 도입도 매우 신중한 방식으로 이루어지고 있어서 급격한 변화가 일어나지는 않을 것이라는 이야기도 들었다.

창작의 자유를 근본적으로 제한하는 검열의 문제도 쉽게 풀리지는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었다.

그러나 ‘모든 것은 결국 시간만이 해결해줄 것’이라는 한 영화감독의 말에서 중국인 특유의 여유, 서두르지 않고 기다리는 태도, 국제적으로 나날이 위상이 높아지는 나라의 국민으로서의 자신감을 엿볼 수 있었다.

이러한 과정에서 중국 영화인들과 한국 영화인들 사이에 단순한 물질적 협력만이 아니라 진정한 정신적 교류가 필요하다는 걸 새삼 절실하게 느꼈다. 동시에 영화 이전의 보다 근본적인 문화적 장벽, 나아가 심리적 장벽 같은 것도 느꼈다.

단순히 영화 정보의 교환이나 수집만으로는 결코 해결되지 않을 어떤 것이 내 앞을 가로막고 있는 것 같은 일종의 답답함과 무력감이었다. 통역을 통해 대화를 나누었기 때문만은 아닌 것 같았다. 언어적 장벽말고도 무언가 마음 속으로 가로막는 것이 또 있었던 것이다.

내가 느낀 답답함은 중국 이외의 다른 나라 사람들을 만났을 때 느꼈던 것과는 좀 다른 성질의 것이었다. 다른 외국인을 만나서 느끼는 일반적인 답답함, 즉 단순히 소통의 부자유스러움이나 서로 상대방에 대한 무지에서 오는 막막함이 아니라 무언가 익숙한 것과 낯선 것이 한데 섞여 있어 더 서먹서먹하고 알 수 없는 것 같은 묘한 느낌이었다.

인종적, 지리적, 문화적으로 이웃이고 역사적으로 오랫동안 근린관계에 있어 왔기 때문에 쉽게 친밀감을 가질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중국인은 영원히 이해할 수 없는 타자일 수밖에 없지 않은가 하는 생각이 문득 문득 들었다.

전보다 중국인들을 좀더 가까이에서 보게 되어서인가. 소위 ‘유교문화권’이나 ‘한자문화권’이라는 단어가 함축하는 동질성이라는 것이 완전한 허구이자 착각이 아닌가 하는 느낌, 동시에 지난 반세기의 이념적 정치적 단절이 만들어낸 차이와 간격이 상호 이해에 결정적 장애로 작용하고 있고 또 앞으로도 계속 그럴 것이 아닌가 하는 착잡함에 사로잡혔던 것이다. 하기야 내가 어제나 오늘의 중국인에 대해 과연 무엇을 안단 말인가.

현재의 중국 영화와 중국 영화인들이 처한 복잡한 상황을 어떻게 순전히 영화에 대한 정보나 지식만으로 이해할 수 있겠는가. 상호 이해는 영화만이 아닌 삶의 전반적 측면에서 서로 다른 점을, 그 차이를 근본적으로 인식하는 데서부터 출발하는 것이 아닌가.

그러므로 중국인들과 진정한 교류를 하고 싶다면 그들 삶의 구조와 역사에서 우리와 비슷한 점만을 확인하려 할 것이 아니라, 우리와 다른 점을 더 우선해서 찾아보려고 애써야 할 것이 아닌가. 같은 동아시아인이라는 막연한 생각은 오히려 교류의 장애가 될 수도 있다는 점을 염두에 둔다면.

최민(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영상미학·본보객원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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