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프리즘]송호근/활력이 한국도약의 자원

  • 입력 2002년 1월 8일 18시 03분


임오(壬午)년의 해가 솟았다. 오늘 솟은 해가 어제의 것과 다를 리 없지만 다르다고 느끼고 달라져야 한다고 각오하는 성정이 인간의 유별난 점일 터이다. 임오년은 신사(辛巳)년과 달라야 한다. 직진 끝에 정지와 비방과 U턴을 밥먹듯이 해댔던 신사년의 악몽에서 탈출해야 한다. 두 번의 선거와 두 개의 세계적 행사를 예정하고 있는 올해의 파노라마는 국제통화기금(IMF)관리체제로 비틀거렸던 한국이 도약의 물살을 탈 수 있을지를 결정하는 계기일 것이기 때문이다.

인생 주기에 있어 변신의 기회는 그저 두어 차례에 불과하다. 흔히들 실패는 성공의 거름이라고 얘기하지만 실패가 잦은 사람은 성공으로부터 멀어지기 마련이다. 그것도 결정적 계기에서 실패하면 다시 일어나기 어렵다.

▼올해는 변신의 기회▼

사람들의 의식은 노년까지 꾸준히 성장한다고들 하지만 의식은 20대에 부쩍 성숙해서 그 상태로 노년까지 이어진다는 것이 요즈음의 절실한 느낌이다. 지혜도 그렇고 타인에 대한 이해심도 그러하다. 깨달음의 기회를 놓치면 수양의 문을 넘지 못한다.

사회도 다를 바 없다. 한국 사회는 몇 년 주기로 단절적 변신의 기회를 가졌다. 시민의 힘으로 권위주의를 무너뜨렸던 1987년이 그러했고, 민간정부를 화려하게 출범시켰던 1993년과 거품이 꺼지고 냉정한 현실로 돌아앉아야 했던 1998년이 그러했다.

그런 계기들을 통과하면서 우리는 한국 사회의 모습이 사뭇 세련되고 단정해지고 있음을 발견한다. 정지, 비방, 회귀를 자주 반복했음에도 15년 전과는 질적으로 다른 성숙의 기미를 느끼는 것이다.

‘하면 된다’고 달려들었던 저돌성이 합리성과 현실감의 여과기제로 걸러졌고, 개발 연대의 일사불란한 동원체제가 시민사회의 다양한 공간으로 분산 흡수되었으며, 글로벌 스탠더드의 파상 공세 앞에서 애지중지하던 우리의 것을 포기할 줄도 알게 되었다.

2002년은 그런 시행착오에 종지부를 찍어야 하는 해다. 학습과 깨달음의 과정은 1987년 이후 15년으로 족하다. 우리의 마음과 머릿속을 헤집었던 지난 세월이 ‘잃어버린 15년’으로 불리지 않으려면 이제 구체적인 변신의 프로그램을 만들어야 한다.

임오년은 우리에게 변신의 계기를, 21세기 한국의 세계적 위상에 변화를 몰고 올 어떤 특별한 일들을 예고한다.

역사적으로 보건대 단절적 도약을 촉진하는 요인은 비교적 단순하다. 영국을 세계의 중심 국가로 만들었던 것은 증기기관과 철도였다. 철도와 기차로 영국은 교역 상대를 찾아 나섰으며 광활한 시장을 확보했다.

요란한 기차소리에 잠을 깬 유럽의 후진국 독일의 융커계급은 뒤늦게 산업 전선에 뛰어들었지만 영국을 물리칠 무기를 곧 고안해냈다. 영어를 고집했던 영국과는 달리 교역 상대국의 언어로 무역을 성사시킨다는 인문학적 지혜였다. 관료들과 함께 민간전문가들이 교역 전선에 나섰는데 바로 이 한 가지의 혁신으로 독일은 영국의 시장을 잠식했다.

이어 미국은 과학적 경영술로 독일을 제압했다. 미국이 최고 성능의 잠망경을 만드는 데 적어도 5년은 걸릴 것이라고 판단했던 히틀러의 계산에는 과학적 경영이 빠져 있었다. 일본은 고유의 제도적 자산을 활용하여 강대국에 합류했다. 그런데 시대 변화에 부응하는 유연성 결핍으로 비틀거리고 있는 중이다.

▼월드컵-선거 ‘성공예감’▼

유럽의 강소국들은 결코 주도권 투쟁에 나서지 않는다. 그것이 화훼든, 금융이든, 중개업이든 한 가지 주특기를 특화하여 일류 국가군에 슬며시 합류하는 데 성공했다.

세계회의와 세계기구를 유치하는 것, 이른바 컨벤션스국가(회의장 국가)로 일류가 되는 나라를 생각해 보라. 얼마나 기발한 발상인가.

영국엔 기술, 독일엔 지식, 미국엔 과학적 경영, 일본엔 제도가 있었다면 한국에는 활력이 있다. 활력이 무슨 도약의 자원이 될 것인가 회의하는 사람이 있겠지만 임오년을 변신의 해로 만들어줄 각별한 에너지가 그 속에 숨어 있다고 믿고 싶다.

지난 세기 동안 세계의 어느 국가도 겪지 못했던 파란만장한 역경을 거치고도 이만한 활기를 유지하고 있는 나라가 얼마나 되는지를 생각해 보라.

필자는 그것을 ‘활력의 세계화’라고 부르고자 하는데 올해 치를 두 개의 행사와 두 개의 선거가 그것의 특별한 계기가 되기를 기대한다.

송호근 서울대교수·사회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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