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평인기자의 현장칼럼]전투부대 첫 여소대장되는 강유미소위

  • 입력 2002년 3월 14일 15시 45분


초급장교의 꽃은 전투부대 소대장이다.

7일 소위로 임관된 강유미씨(24·육사 58기)는 여자로서 최초의 육군 소대장이 된다. 학사장교 출신 등의 여자 육군 소위들이 예전에 있었지만 전투부대의 소대장이 된 적은 아직 없다.

육사는 올해 처음으로 여성 장교 20명을 배출했다. 그러나 이들 중 육군의 기간인 보병은 6명. 그 중에서도 전산직 2명을 빼고 나면 실제 소대장을 할 수 있는 사람은 4명이고 강 소위는 바로 그 4명 중 한 명인 것이다.

육사 졸업식을 마치고 16일 광주 상무대로 장교기본훈련과정(OBC)에 들어가기 전까지 짧은 휴가를 즐기고 있는 강 소위를 9일 서울 태릉 화랑대에서 만났다. 장교 정복을 입고 나타난 강 소위는 앳되면서도 강인해 보였다. 육사에 수석 입학했고 소수점 이하의 근소한 성적 차로 남자 동기생에게 수석 졸업 자리를 내줬다. 육사의 경우 입학할 때 수석으로 들어왔어도 졸업할 때는 상위권에 드는 것조차 쉽지 않다. 그래서 수석 입학인 그녀의 차석 졸업은 수석 졸업 이상의 의미를 갖고 있다.

그녀는 16일부터 14주간의 OBC를 끝내고 나면 ‘힘들어서 입이 두 개 있어도 할 말이 없다’는 강원 전방의 모 사단으로 배치돼 소대장 생활을 시작한다. 육군 전투사단은 비무장지대(DMZ) 경계를 맡고 있는 GOP사단, 예비사단, 후방사단 등으로 구별되는데 강 소위가 배치되는 곳은 예비사단. GOP사단보다 정신적 스트레스는 덜하지만 군사훈련이 많아 육체적으로는 가장 힘든 사단이다.

“너도 영화 ‘GI제인’에 나오는 데미 무어처럼 한 손으로 푸시업(push up)도 하고 그러니?” 친구들이 이렇게 물을 때면 그녀는 웃고 만다. 그녀는 그 영화를 육사에 들어와 그 힘들다는 기초군사훈련을 받을 때 봤다. 그 시절 죽어라고 열심히 달렸지만 보폭이 큰 남생도들에게 자꾸 뒤져서 결국 대열에서 낙오해 울먹이던 순간이 많았다. 그때는 정말 ‘GI제인’이 부러웠다.

육사에 들어온 건장한 남자들과 발을 맞춰 뛴다는 것은 너무 힘든 일이었다. 처음에는 2㎞도 채 뛰지 못했다. 그러나 지금은 남생도들과 똑같이 매일 3∼5㎞를 뛰고 또 매주 한번씩 20㎏ 군장을 메고 5∼10㎞ 무장구보를 한다. 그녀는 “누구나 3, 4학년이 되면 낙오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녀에게 육사는 체력 순으로 사람을 뽑는 곳이 아니라 평균의 체력을 가진 사람을 뽑아 평균 이상이 되게 하는 곳이다.

상황은 간혹 역전됐다. 2학년때 받는 유격훈련 중 가장 힘들다는 1주일간의 정찰 코스. 얼마나 힘들었던지 한 남자 동기생은 “너희 여자들이 그때 퍼졌으면 나도 같이 퍼지고 싶었다”고 털어놓기도 했다. 여자들이 낙오하지 않자 남자들도 낙오할 수 없었다. 동기생들은 한 명의 낙오자도 없이 모두 목적지에 들어왔다. 체력은 늘 그런 것은 아니지만 정신력이기도 한 모양이다.

그녀는 팔굽혀펴기 60여번(2분간), 윗몸일으키기 60여번(2분간) 등을 거뜬히 해내는 체력을 갖췄다. 태권도 검도 유도 실력도 2단이다. 입학할 때 날씬했던 종아리가 남자들처럼 굵어져 그녀를 안타깝게 한다. 그러나 남녀간의 체력 차이를 육사의 건장한 남생도들과 같이 생활하면서 뼈저리게 느끼고 있는 그녀다. 월등한 체력으로 남자 소대원을 장악한다는 것이 쉽지 않을 것이라는 것도 잘 알고 있고 또 그럴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체력이 아니라 ‘소대장을 믿고 따라가면 언제나 틀림없다’는 신뢰감과 ‘여자니까 고민을 잘 들어줄 것 같다’는 편안함으로 소대를 지휘하고 싶다”고 그녀는 말했다.

준비된 소대장이라 하더라도 직접 그녀를 소대장으로 맞는 당사자들은 난감해 할지도 모른다. 소대의 병사들은 훈련나갈 때 소대장 군장을 꾸리면서 소대장 속옷은 어떻게 챙겨야 하나 고민할 것이고, 인접 소대장들은 독신자숙소(BOQ)에서 예전처럼 옷 벗고 활개치고 돌아다니긴 다 글렀다고 불평할 것이다. 직속 상관인 중대장과 대대장도 매사에 여자 소대장을 배려하느라 신경이 쓰일 것이다. 어쩌면 어떻게 해서든지 그녀를 받지 않으려고 노력할지도 모른다.

정작 강 소위는 태연하게 “불편하고 어려운 게 있으면 그때 그때 말해 하나씩 해결하겠다”고 말했다. 이미 4년 전 금녀의 집인 육사에 들어왔을 때부터 이런 문제에 계속 직면해왔다. 어떤 남자 선배들은 처음에 아예 경례조차 받지 않는 일도 있었다. 앞으로도 수없이 똑같은 문제에 부닥칠 것이다. 그들에게 문제인 것이 그녀에게는 일상이 돼 있다.

강 소위 동기가 육사 여생도 입학의 첫 테이프를 끊은 이후 해마다 정원의 10%에 이르는 여학생이 들어왔다. 지금은 1∼4학년 전체 생도 약 1000명 중 100명이 여생도이니 육사도 많이 변했다. 육사에서는 원칙적으로 이성교제를 금지하고 있다. 그러나 젊은 남녀가 함께 생활하는데 과연 그럴 수 있을까.

그녀는 “남녀가 함께 울고불고 코흘리고 피흘리는 장면을 다 보게 되는 게 우리의 훈련 과정”이라며 “이성이란 약간 떨어져 있어야 신비감이 있는 것인데 너무 가까이 있어서인지 동기들이 이성으로 느껴지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 말은 진실일지 모른다. 그러나 남녀관계를 여자 후배와 남자 선배, 혹은 여자 선배와 남자 후배로 확대해 보면 그녀의 답변은 정곡을 피해간 것이다. 실제 강 소위와 동기생인 여생도 한 명이 육사 2년 선배인 장교와 4월 중 결혼한다. 이는 육사 역사상 최초의 선후배간 결혼으로 기록될 것이다.

그녀가 소대장으로 부임하면 소대원들은 대개 남동생뻘이 된다. 군대에는 젊은 남자들만 몰려 있어 정이 그리운 곳이고 요즘은 여자가 연상인 남녀관계도 많은데 소대원들 중 누군가는 누나 뻘 되는 소대장에게 혹시 연애의 감정을 품을지도 모른다. “어떻게 하겠느냐”고 묻자 그녀는 “속으로 그런 감정을 갖고 있는 거야 어쩔 수 없겠지만 외부로 드러내 상관과 부하의 관계를 어색하게 만들 때는 규칙에 따라 처리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런 그녀는 어떤 남성을 이상적으로 생각할까. 일단 ‘모든 걸 포기하고 널 만나러 왔어’라는 스타일의 남자는 딱 질색이다. 그녀는 “포부가 있고 자기 일에 최선을 다하는 사람이 좋다”고 말했다. 한 명을 예로 들어달라고 하니까 그녀는 한참 고민하다가 연예인 홍경인을 꼽았다. 홍경인이 좋은 이유는 쇼든 코미디든 장르에 상관없이, 주역이든 조연이든 맡은 역할에 상관없이 항상 열심히 하고 심지어 망가지는 역할까지도 열심히 하는 배우이기 때문이다.

강 소위는 소대장의 길을 선택하면서 결혼 문제를 어떻게 하기로 한 걸까. 도대체 여자가 소대장 중대장 등을 하면서 결혼생활을 하는 것이 가능할까. “육사의 교수님들이 그러셨는데요, 부부가 매일 만나야 할 필요가 있을까요. 주말 부부도 괜찮을 거라고 했어요.”

의무복무하는 사병들과 직업적인 군 지휘부간의 고리 역할을 하는 소대장 생활은 장교로서 가장 힘든 1년이다. 중위 소대장만 돼도 괜찮다. 부대 환경에도 익숙하고 병사들도 ‘짬밥’을 인정해준다. 그러나 외로운 다이아몬드 하나, 소위는 고달프다. 학교나 훈련소에서 배운 규범은 실제 부대 생활에 그대로 적용되지 않아 병사들과 잦은 충돌을 일으키기도 한다. 그러나 그녀는 걱정하지 않는다. “육사 출신이 인정받는 것은 아는 게 좀 많아서, 실력이 좀 좋아서가 아니다. 어려움에 직면했을 때 어떻게 해야되는 지를 알고 있어서다”고 말했다. 육군 중령으로 예편한 그녀의 아버지 강일두씨(52·삼사 4기)는 딸의 임관을 축하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수고했다. 그러나 이제부터 시작이야.”

pis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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