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시간이 더 흐르기 전에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 하나 있다. 그것은 ‘기술이전’ 문제다. 10여 년 전 고속철도의 타당성을 논의할 때 제기된 논란은 ‘과연 그렇게 빠른 기차가 좁은 한국 땅에 필요한가’ 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런 논란을 잠재운 것은 ‘기술을 이전받아 우리도 고속철도 차량을 생산할 수 있으면 이득이 많다’는 논리였다.
▼佛 기술이전 주체 불분명▼
기술 이전의 단계는 크게 세 가지로 나눌 수 있다. 첫 단계는 기술지도를 받으며 부품을 조립해 보는 것이고, 그 다음이 독자적으로 만들어보는 조립생산이다. 마지막으로 자체적으로 설계를 수정해 생산하는 것으로 이때에 비로소 기술을 완전히 습득했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필자가 걱정하는 이유는 기술 이전의 애매모호함 때문이다.
기술 이전은 성격상 잘 보이지 않는 것이다. 그래서 중간 점검이 용이하지 않다. 마지막 단계인 자체모델을 생산해 봐야 성과를 알 수 있다. 선생님이 아무리 문제풀이를 많이 해주어도 학생 스스로 문제를 풀어봐야 결과를 알 수 있는 것과 마찬가지다. 그래서 나중에 기술 이전에 문제가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더라도 그때는 이미 늦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 책임을 따지기가 어렵고 또 보충수업을 해줄 리도 없기 때문이다.
한국 측은 기술 이전을 위해 프랑스 현지에 기술진을 파견해 연수를 받고 있다. 그리고 몇 대의 고속철 차량을 도입해 시험운행하면서 운행기술을 습득하고 있다. 그런데도 걱정되는 점은 차량 제작의 종합적인 기술을 이전해주어야 할 주체가 명확하지 않다는 점이다. 초기에는 차량제작회사인 알스톰사가 기술 이전의 주체인 것으로 알려져 있었으나, 알스톰사는 그 책임이 각 부품회사에 있다고 말하고 있다고 한다.
책임이 각 부품회사로 나누어져 있으면 책임 소재가 불분명하고 협조가 어려운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리고 현지에서 연수를 받는 과정에서 한국 기술진이 접근할 수 있는 기술에 많은 제약이 있다는 말도 들린다. 한국어 통역 없이 영어로만 진행되어 전달에 문제가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고 한다. 또한 프랑스 측에서는 ‘한국 측이 연수받은 사람을 다른 부서로 보내버려 연속성이 없다’고 지적한다는 말도 들린다.
필자는 확실한 기술 이전을 위해 다음 세 가지를 제안하고자 한다. 첫째, 초기의 고속철도의 목적을 다시 한번 확인하고 기술 이전의 중요성을 인식하라고 강조하고 싶다. 우리가 빠른 기차를 타기 위한 목적 하나만으로 그 많은 돈을 들이고 있는 것은 아니다. 첨단기술을 습득해 우리도 철도기술의 선진국으로 도약해 보고자 하는 목적도 있다. 만일 차량제작 기술을 배우지 못한다면 반쪽의 성공에 그친다는 인식이 필요하다.
둘째, 현재의 기술 이전 상태를 점검하라는 것이다. 기술을 이전받는 기술인력이 분야별로 충분한지 확인할 필요가 있다. 차량의 전체 설계도를 바탕으로 배워야 할 핵심기술을 다시 한번 더 정리하고 점검할 필요가 있다. 필요한 자료와 도면은 확보되었는지, 부품을 생산하는 협력업체는 모두 파악되었는지 확인할 필요가 있다.
▼독자모델 개발 서둘러야▼
셋째, 독자모델의 개발과 생산계획을 수립하라는 것이다. 자체적인 생산은 기술을 제대로 배웠는지 확인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과정이다. 이런 확인은 배운 후에 바로 해야 효과적이다. 시간이 지나면 배운 것도 잊어버리고, 또 빠뜨린 것을 프랑스 측에 다시 물어보기도 어렵다. 기술진이 계속해서 함께 일을 하지 않으면 이직하는 사람이 생겨 기술진이 흩어져 버린다. 그래서 당장 차량이 필요하지 않더라도 설계도를 우리 실정에 맞게 수정해 시제품을 만들어 보는 것이 필요하다.
잘 하고 있는데 중간에 무슨 소리냐고 할지 모른다. 성공적인 건설공사만이 우리의 목표가 아니었음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
철도차량 도입계약서에 기술 이전 비용이 포함되어 있다. 지금 챙기지 않으면 그 돈은 날아가 버린다고 생각하면 된다. 부디 ‘꺼진 불도 다시 보는 심정’으로 한번 더 점검해주기 바란다.
이광형 한국과학기술원 국제협력처장 겸 미래산업 석좌교수·바이오정보학 khlee@if.kaist.ac.kr
구독
구독
구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