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의 날을 보내며]윤영철/권력비판-감시가 출발점

  • 입력 2002년 4월 7일 18시 49분


우리가 소문난 박물관을 찾는 이유는 한 사회의 모습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주는 전시물을 감상함으로써 뛰어난 교육효과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전문적 식견과 안목을 갖춘 큐레이터는 수집한 전시물 가운데 그 사회의 특성을 가장 잘 설명해 주는 사물을 추려낸 후에 관람객들의 시선과 동선을 고려하면서 이들을 배치한다. 어떤 전시물을 선택하여 어디에 놓을 것인지는 큐레이터가 결정할 일이다. 관람객은 어느 박물관에 가볼지를 결정할 뿐이다.

▼여론형성 능력 타매체보다 앞서▼

우리가 좋은 신문을 읽는 이유도 소문난 박물관을 찾는 이유와 크게 다르지 않다. 역시 그날 그날의 세상 돌아가는 모습을 잘 알고자 하는 정보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서이다. 전문가의 자질을 구비한 언론인들은 그날 일어난 사건들 가운데 보도할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는 것들을 선별한 후에 이를 재구성해 독자들에게 제공한다. 역시 어느 신문을 구독할 것인가는 독자들이 판단할 문제이다.

관람객들이 소문난 박물관을 계속 찾는 한 그 박물관은 건재할 것이다. 마찬가지로 독자들이 특정 신문에 애정을 갖고 계속 구독하는 한 그 신문은 결코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최근 여권의 대선 주자가 동아일보의 폐간을 거론하고 사주에게 사퇴를 요구하고 소유구조를 개편하도록 하겠다고 발언한 사실은 가히 충격적이라고 하겠다. 우선 사주를 바꾸고 사원지주제를 도입하거나 소유지분을 제한하면 신문의 논조가 바뀔 것이라는 사고의 단순성에 문제가 있다. 하지만 이 발언은 자유주의 언론이념을 정면으로 부정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리고 독자의 신문선택 권리를 철저히 무시하고 있다는 점에서 논란을 야기할 수밖에 없다.

여권에 이런 정서가 흐르고 있다면 작년 언론사 세무조사가 조세정의 실현이라는 긍정적 명분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비판언론 길들이기라는 정치적 의도에서 비롯됐음을 부정하기 힘들다. 여권이 집권후반기에 신문에 대해 개입주의 정책을 펼치려고 한 것은 언론자유의 보장이라는 당위적 명분보다는 철저한 뉴스관리를 통해 선전 효과를 극대화함으로써 얻는 정치적 이득을 우선적으로 고려했음을 의미한다.

타당한 근거도 없이 신문시장을 실패로 단정짓고 소유지분 제한 등의 개입주의적 정책을 도입하려고 했던 시도는 난관에 부닥쳐서 결국 흐지부지되고 말았다. ABC제도조차 정착이 안된 상황에서 독자시장의 병폐를 지적하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었으며, 민주화 이후 신문 방송매체들간의 보도 시각 다양성이 최고조로 확대되었던 시기에 메이저급 신문 때문에 의견 다양성이 훼손되고 있다는 주장은 설득력을 얻을 수가 없었다.

그러나 작년의 언론개혁 논쟁은 신문 종사자들에게 중대한 교훈을 주었다. 민주주의로의 이행 과정에서 얻어낸 언론의 자유를 지키기 위해 언론계 스스로가 어떤 노력을 기울여야 하는가를 분명히 일깨워주었다고 하겠다. 정치인들은 여야를 막론하고 신문을 자기편으로 끌어들이려는 포섭노력을 기울이고 있으므로 신문종사자들은 자유와 자율성을 확보하기 위해 법적으로나 윤리적으로 티끌 만한 결함도 없어야 한다는 것이다.

각종 뉴미디어의 도입으로 무한 경쟁시대가 도래했음에도 불구하고 정치권에서 아직도 신문을 중요하게 여기는 데에는 충분한 이유가 있다. 권력을 획득하거나 유지하기 위해서는 신문이 지니고 있는 여론동원 능력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활동영역을 급속도로 확대한 방송도 여론형성의 차원에서 신문을 능가하지는 못하고 있다. 매체의 특성상 방송은 오락성이 강하므로 비판적 사고와 심층적 인식을 요구하는 저널리즘 기능을 발휘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고 하겠다. 최근 등장한 인터넷도 부분적으로 저널리즘의 기능을 수행하고 있지만 정보의 신뢰성과 진실성을 검증하기 어렵다는 한계를 안고 있다.

▼심층보도-송곳분석 강화해야▼

이처럼 신문의 핵심기능을 여론형성이라고 한다면 신문의 존립기반은 여론형성의 주체인 독자에 있다. 따라서 권력의 정치논리나 소유주나 광고주의 경제논리에 얽매이지 않고 독자에 대해 양질의 정보 서비스를 충실히 제공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교육수준이 높아진 독자는 사건의 전말을 심층적으로 파헤치고 날카로운 분석력을 엿볼 수 있는 권위지를 원하고 있다. 비판정신의 전통을 이어받아 권력을 감시하는 파수꾼의 책임을 충실히 수행하는 것이 권위지의 출발선이다.

윤영철 연세대 교수·언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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