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이번에는 사안이 영토문제인 독도영유권인데다 양국 공동 개최의 월드컵축구대회 행사를 눈앞에 둔 시점이어서 심각성이 더하다. 사상 처음 세계적 행사를 공동 개최하면서 상호간 미래를 위해 최대한 성의를 다해야 할 판인데, 이렇게 찬물을 끼얹으니 한심스럽기 짝이 없다. 한국이 안중에 없다는 말인가. 그들이 위협받고 있다는 ‘고유영토’로 사할린과 센카쿠열도 등을 함께 거론했으니, 국제 불량자란 소리를 들을까 걱정스럽다.
▼반성없는 일본 역사책▼
작년의 중학교 역사교과서 파동은 우여곡절 끝에 ‘역사공동연구위원회’ 구성을 합의하는 데까지 갔다. 그러나 공동연구 결과를 교과서에 반영하느냐 하는 문제를 놓고 이견이 많다. 교과서 반영에 대해 나는 두 가지 이유에서 찬성하지 않았다. 첫째, 왜곡에 대한 우리측의 지적이 교과서 서술 요구로까지 가면, 내정간섭이라는 반격을 받을 우려가 없지 않다. 둘째, 이런 공동작업은 성사가 되더라도 일본측에 의해 악용될 우려가 없지 않기 때문이다. 지난 130여년 간 일본이 한국에 대해 저지른 일들로 미뤄보면, 공동작업은 면죄부 발급 절차로 악용될 우려가 크며, 그렇게 되면 이것이 또 다른 외교적 악재가 될 우려를 떨칠 수 없다.
필자는 교과서의 오류와 왜곡은 낱낱이 밝혀 지적하되, 고치는 것은 일본 스스로의 힘에 맡겨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야 자생력이 생기고 영속성도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공동위원회가 출범도 하기 전에 예상대로 같은 문제가 발생했으니, 필자의 우려는 기우가 아니었다.
문제의 ‘최신 일본사’는 한일병합, 명성황후 시해 등에 관한 서술에서는 개선이 보이나 임나일본부설, 일본군위안부 등에서는 변화가 없다고 한다. 이렇게 개선과 개악을 섞은 것은 근본적 반성이나 바로잡기를 하지 않겠다는 뜻이다. 일본 내에 역사 왜곡을 자행하는 우익을 비판하는 세력이 있기는 하다. 그러나 그 세력이 종전 후 반세기가 넘도록 우익의 시대착오적 생각을 누르지 못하고 있는 것은 깊이 반성할 점이다.
일본 지식계는 전반적으로 메이지(明治) 일본을 지나치게 미화하고 있다. 메이지 일본이 서양기계문명을 수용하는 데는 성공했지만, 국제관계는 처음부터 침략주의를 표방해 대실패작이었다. 일본이 살기 위해 한국을 정복해야 한다는, 이른바 ‘정한론(征韓論)’이 메이지 일본의 알파요 오메가였다. 패전 일본에 대한 전쟁책임도 쇼와(昭和) 일본에게만 묻고 메이지 일본은 제외했기 때문에 ‘메이지 영광’이 역사 왜곡의 뿌리로 남은 것이다. 비판세력도 이에 대한 비판적 시각이 없기 때문에 그 힘이 약한 것이다.
근대적 국제관에서는 당시 조선이 일본보다 더 평화적이었으며, 앞서가고 있었다. 조선은 중국 중심의 구질서에서 벗어나 국제사회에 독립국으로 진입하기 위해 국제법을 준수하는 입장을 시종 지켰다. 강화도조약 체결에서도 알려진 것과는 달리 대단히 능동적이었고, 조미(朝美)수호통상조약은 아시아 최초로 수입 관세율을 30%까지 적용했으며, 대한제국의 헌법은 국제통용의 국가법에 근거하는 국제지향성을 강하게 보였다. 러-일전쟁의 무력이 동원되기 직전 나라 보전을 위해 중립국을 선언한 것은 결코 즉흥적인 것이 아니었다.
▼정부 차원서 적극 대처를▼
일본은 이런 조선의 피나는 자구적 노력마저 식민주의 역사관으로 땅속 깊이 묻고, 조선을 쇄국과 무지의 나라로 왜곡하였다. 이보다 더 큰 죄악은 없는데, 그 망령이 지금도 활개치려 한다. 일본 우익의 역사 왜곡은 미래의 세계평화마저 파괴하려는 비수나 마찬가지이므로 철저하게 제거되어야 한다. 일본의 양심적 지식인들이 먼저 나서 사생결단적 자세를 보여야 한다.
우리에게도 책임이 없지 않다. 평소 일본인들이 읽을 만한 한국 역사책을 일본어로 번역하는 일은 아무도 하지 않는다. 정부는 교과서 문제가 터지면 대책비로 수십억원을 쓰면서 야단법석을 떨지 말고 평소 이 같은 번역사업을 펴 일본 각급 도서관에 배부해야 한다. 알아야 반성하지 않겠는가. 민족적, 국가적 문제들은 정권 차원을 넘어 근원적으로, 거시적으로 검토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이태진 서울대 교수·국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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