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4일, 온 캠퍼스를 휩쓴 그날의 환성과 감동을 어찌 잊을 수 있으랴! 더구나 중국 일본 한국, 그날의 경기 순서와 스코어(0-2, 2-2, 2-0) 또한 묘한 암시적 느낌을 안겨 주었다. 베이징 시간으로 경기는 오후 2시30분에 중국, 5시에 일본, 7시30분에 한국의 순서였다.
▼베이징 강타한 한국축구의 힘▼
그날은 화요일, 오후 2시30분이면 한창 수업할 시간이었다. 그런데 학생들은 모두 TV가 있는 교실로 가고 강의실은 텅텅 비어 있었다. 거리도 한산해지고…. 중국팬들도 ‘붉은’ 한국팬들 못지않게 광란적이었다. 적어도 첫 패배의 고배가 있기 전까지는…. 그리고 일본이 비기고… 그러다가 한국이 폴란드를 꺾고 첫 승을 올리자 마치 자신들이 승리한 듯 기뻐해 주고 축하해 주었다.
중국도 “10년 후에 보자!”고 다짐하면서. 한국에서 온 한 교수는 카페에서 맥주 한 병씩을 돌리고, 서울의 신촌 학원가와 같은 베이징 우다커의 한국 유학생들은 “오늘은 내가 쏜다!”를 서로 외치며 식당가로 모여들었으며, 필자도 아래층 카운터에 음료수를 돌렸다.
자취하는 한국 학생이 옆집 주민에게 너무 시끄럽게 해서 미안하다고 하니, “이런 날은 괜찮다!”고 오히려 격려했단다.
그날 밤 이후, 우리 외국인 숙사 앞마당에는 우뚝 선 파라솔 모양의 거목 아래 TV를 내걸고 매일 저녁 40∼50명이 둘러앉아 맥주를 즐기며 환성을 올린다. 경기하는 나라에 따라 팬들이 매일 바뀐다.
한중일 경기에 관중이 가장 많이 모이지만, 영국과 아르헨티나 경기 때도 대단했다. 이들의 환성은 아직까지 매일 밤 파도처럼 들려온다. 그리고 내일도 교실에서 잠자는 학생이 많겠지.
한낱 운동경기가 사람들을 한곳으로 모으는데 그렇게 위대한 힘을 가질 것이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한국 국민으로서 첫 월드컵 승리라는 역사적 의미도 있지만, 이번 한국팀의 첫 승이 우리 500만 재외동포에게 안겨준 감격과 자부심은 더 없이 크다. 그것은 중국인들이 월드컵을 통해 한국인의 정신력과 문화의 주체성을 재평가하는 데에서도 엿볼 수 있다.
상대팀에 비해 작은 체구로 폴란드팀을 물리친 한국 선수들의 정신력뿐만 아니라 응원팀이 체계적이고 일사불란하게 힘을 모으는 모습, 온 국민이 한마음으로 월드컵 손님을 맞이하는 광경에 이르기까지 중국의 언론은 하나도 놓치지 않았다. 아직도 중국인들은 한국 사람들이 97년 외환위기 때의 ‘금 모으기’를 거론하며 부러워하는 데 놀라지 않을 수 없다. 한국인들은 다 잊어버렸는데.
그리고 베이징의 한 신문 논설에서는 이번 월드컵 개막식에서 한국 문화의 새 면모를 발견했다고 했다. 98년 프랑스 월드컵의 개막식이 수백 명의 미녀로 장식된 ‘즐거움’의 축제였다면 서울의 개막식은 즐거움과는 다른 어떤 ‘의미’를 보여 주었다는 것이다. 즉 ‘환영’과 지구촌의 ‘어울림’이 주제가 되었고 공연단의 의상이 고대의 의상에서 적절한 변형을 거쳐 요즘의 ‘한류(韓流)’ 분위기에 맞는 주체성을 유지하고 있다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한류’를 중국의 청소년들이 한국의 영화 드라마에서 가벼운 영향을 받았을 뿐 문화의 주류를 이루지는 못한다는 견해가 있었으나, 이번 행사를 보면서 ‘한류’ 속에 내재된 강한 활력과 영향력은 사실 필연적인 것이라고 밝히고 있었다.
▼월드컵, 도약 기폭제 됐으면▼
요컨대 개막식과 한국팀의 경기현장에서 한국 국민의 강한 민족적 응집력과 미래를 향한 발전적 기세가 거리낌없이 표현되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과분한 평가를 받으며 우리 교포는 세계 곳곳에서 어깨가 으쓱해질 것이다. 그러나 필자는 너무나 많은 한국의 정치 사회적인 문제와 민족의 약점을 잘 알고 있다.
그렇지만 일반 국민에 대한 교육도 어린이 교육과 마찬가지로 ‘칭찬’을 통한 교육이 가장 효과적이라는 이론에 따라 한국팀이 반드시 16강에 진출해 우리 국민의 기를 최대로 살려줄 것을 기원한다.
과연 이번 월드컵이 88 서울올림픽처럼 우리 국민에게 다시 한번 ‘높이뛰기 같은 도약’을 안겨다 줄 것인가.
홍연숙 한양대 명예교수·영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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