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월드컵은 끝났고, 신문지상에 오르내리는 정치 경제 뉴스는 그런 마음을 달래주지 않는다. 잔치 뒤에 찾아오는 공허감이랄까. 월드컵을 계기로 국가 인지도가 급상승했다거나 안 팔리던 물건이 재고가 달릴 정도로 수요가 늘었다는 소식은 다행스럽기는 하지만 흥을 돋우지는 않는다.
▼시간죽이기式 여흥만▼
그래서인지 뉴스를 접하는 방식도 달라진 듯하다. 정치 뉴스는 그냥 흘리고, 경제 뉴스는 약간 신경쓰고, 사회 문화 뉴스에는 각별한 관심을 쏟는 것은 신나는 어떤 사건을 기대하는 사회심리에 휩쓸린 탓인지 모른다. 아무튼 월드컵 열기를 발전 에너지로 전환시키려는 실용적 전략도 중요하지만, 열병 뒤에 잦아드는 허탈감을 추스를 사회심리적 처방도 중요하다. 그런데 아쉽게도 묘안은 없다. 역사상 처음으로 대규모 길거리응원에 나섰던 시민들이 돌아갈 곳은 별로 없어 보인다. 들뜬 마음을 가라앉히고 새롭게 흥겨워할 나의 문화와 놀이 개발에 별로 신경을 쓰지 못했기 때문이다.
‘어떻게 놀 것인가’는 경제가 어느 수준에 도달하면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질문이다. 더욱이 주5일근무제로 낯선 뭉텅이 시간이 던져진 요즘에 그 질문은 일반인의 주요 관심사가 되었다.
이런 때에 한 곡 멋들어지게 불러젖힐 유행가라도 히트한다면 심심치는 않겠는데, 웬일인지 ‘국민가수’인 조용필도, 트로트의 대부격인 태진아도 조용하고 TV는 아이들 차지라 시간 보내기가 막막해졌다. 행여 여기에 주5일 수업제가 도입되면 좁은 공간에서 아이들과 뒤엉킬 주말은 일종의 공포가 될 가능성이 크다. 여가 문화를 만들어야 할 시점이 된 것이다.
한국인들이 여가시간을 보낼 때 어른의 경우는 노래방 식당 술집을, 청소년은 PC방을 가장 애용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른바 가무를 즐기고 먹고 마시며 흥겹게 지내는 것이 나쁠 리는 없지만, 그것은 진정한 의미에서 ‘여가 문화’가 아니라 오히려 ‘시간을 죽이는’ ‘여흥 문화’다. 말하자면 가장은 술집에서, 아이들은 PC방에서 놀다가 한번 같이 외식하고 노래방 가서 유행가 제창하는 것이 여가시간을 보내는 한국적 전형인 셈이다. 사색, 담화, 가족 단위의 공동작업 등과는 사뭇 거리가 멀다.
선진국도 국민소득 1만달러를 넘는 순간 이런 과정을 거쳤을 것이지만, 비교적 규모가 큰 도시에도 식당과 술집이 도심지역 외에는 찾아보기 힘든 것은 흥미로운 현상이다. 우리가 먹고 마시는 일을 워낙 좋아했기 때문인지는 모르겠으나, 그들은 언제부터인가 음주 문화로부터 즐기는 문화, 활동하는 문화로 패턴을 바꾸었다는 점이 중요하다. 즐기는 문화와 활동하는 문화는 모두 가족을 공통 단위로 한다.
유럽 중소도시의 경우, 부유층은 가족 단위로 요트와 승마를 즐기고, 혹 시간이 나면 해외 여행을 한다. 중하위층은 시 외곽에 작은 땅을 불하받아 휴가용 통나무집을 짓거나 주말농장을 가꾸기도 한다. 대부분 주변 자연환경이 좋은 곳이어서 하이킹, 야영이 자연스럽게 이루어진다. 놀라운 사실은 지방자치단체에서 이런 활동을 권장하고 지원한다는 점이다. 대도시의 시민들은 조금 다르다. 상층민은 오페라 음악회 전람회 등 고급문화를 즐기는 반면, 하층민들은 축구장을 찾거나 공공 스포츠시설을 애용한다.
▼주5일시대 정신 살찌우자▼
도심 지역에 길고 단정한 산책코스와 공원을 설치해 가족끼리 정겨운 담화와 조촐한 소풍이 가능하도록 배려하는 것도 눈여겨볼 만하다. 날씨가 궂은 탓도 있겠지만 독서는 여가의 빼놓을 수 없는 동반자다. 담화와 사색이야말로 여가 문화의 핵심이며 문화정책도 그런 방향으로 설계되고 추진된다. 겉으로는 한없이 무료해 보이는 유럽사회의 내면에는 자기의 문화공간을 애틋하게 가꾸어 가는 바쁜 손길이 있다.
여가 문화란 정신적 자산을 축적하는 활동이다. 월드컵 열기에 푹 젖어들었던 경험은 소중한 것임에 틀림없다. 그런데 바로 그 잊을 수 없는 ‘맛’ 때문에 나를 열광시켜줄 또 다른 무엇을 막연히 기다리는 것은 마음의 양식이 빈곤하다는 증거일 터이다. 눈살 찌푸릴 일들이 다반사로 일어나는 이 삼복 더위에 나와 내 가족의 정신을 살찌울 여가 문화를 설계해보는 것도 괜찮은 일이다.
송호근 서울대 교수·사회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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