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전진우]매미와 新黨

  • 입력 2002년 8월 16일 19시 03분


어느 오래된 아파트단지 옆 키 높은 미루나무에서 매미들이 운다. 찢어지게 운다. 잠시 울음을 그친 매미들이 얘기를 나눈다.

저 낡은 18평 아파트가 4억원이래. 아냐, 한 달 새에 1억원이 더 올라 5억원이라던데. 아무리 재개발을 한다지만 그게 말이 돼? 그 큰돈을 벌려면 우리가 얼마나 오랫동안 울어야 할까. 야, 매미가 운다고 돈 되냐? 누가 그걸 모르냐. 기가 막혀서 하는 소리지.

기가 막힌 건 신당이 더해. 신당? 또 새 당이 생겨? 넌 신문도 안 보냐. 민주당이 문닫고 신당을 만든다잖아. 왜? 민주당 간판으로는 이번 대통령선거에서 도대체 게임이 안 된다는 거지. 아니, 매미 유충이 탈피(脫皮)한다고 나비되냐? 간판 바꾼다고 새 당이 되는 거냐고. 이런 답답한 친구하군. 정치하는 사람들이 그런 것까지 생각하는 것 봤냐. 그냥 그렇다고 우기는 거지.

결국 YS당 DJ당 모두 실패한 거야. 5년 전에는 YS 신한국당이 이회창 한나라당에 부정되더니 이제는 DJ 민주당이 그 꼴이 됐으니. 하기야 신한국당이고 민주당이고 그게 무슨 정당이었냐. 오로지 자기들 보스 하수기관이었지.

그나저나 신당은 제대로 되기는 되는 거야? 제대로 되기는 뭐가 제대로 돼. 신당 깃발도 흔들기 전에 찢어질 판인데. 찢어져? 그건 또 왜? 아무리 매미지만 세상 돌아가는 것쯤은 좀 알고 살아라. 얘기가 좀 길어지더라도 한눈팔지 말고 잘 들어. 원래 민주당이 신당으로 탈바꿈하자는 데는 당내 세력간에 서로 다른 꿍꿍이속이 있었지. 노무현 대통령후보의 주류와 중도파, 동교동 구파와 이인제씨의 충청세력을 중심으로 한 비주류가 서로 다른 계산을 하고 있었단 말이야. 주류는 신당의 대선후보 재경선을 통해 노풍(盧風)을 다시 살려보자는 것이고, 중도는 정색하고 국민경선으로 뽑은 노 후보를 밀어내기는 명분상 뭣하니까 재경선에서 자연스럽게 낙마시키자는 거지. 비주류는 아예 노무현씨에게 후보 자리부터 내놓으라는 것이고.

신당을 만들기도 전에 후보 자리부터 내놓으라는 건 무리 아닌가? 신당이 출범하면 민주당 후보 자격은 자동적으로 없어질 텐데. 비주류측은 노무현씨가 후보 자리를 지키고 있는 한 외부인사들이 들어오지 않는다는 거지. 그래? 내가 듣기로는 정몽준씨는 이번 신당에 별 관심이 없다고 하고 박근혜씨는 노무현씨와는 애초부터 생각이 다르다던데.

그게 문제지. 월드컵으로 요즘 한창 인기가 높은 정몽준씨와 박정희 전 대통령의 장녀로 영남권에 일정한 영향력이 있는 박근혜씨 등이 참여해줘야 결과야 여하튼 신당의 재경선이 흥행이라도 될 텐데 그게 안 되면 정말 신당의 신(新)자가 무색할 지경이지.

내 생각은 달라. 난 박근혜씨의 정치적 성향에 동의하고 말고를 떠나 이념과 노선이 맞는 사람끼리 정당을 해야 한다는 그의 말만큼은 옳다고 봐. 따라서 신당이라면 당의 이념이나 정강 정책이 전의 당과 구체적으로 어떻게 다르다는 것인지 그것부터 내놓아야 하는 것 아냐. 그렇지 않고 흥행이 된다고 무턱대고 이 사람 저 사람 끌어들여서야 그게 무슨 정당이야. 그리고 그런 정당이 집권을 한다고 한들 나라 꼴이 뭐가 되겠어. 몇몇의 권력나눠먹기일 뿐이지. 안 그래?

권력나눠먹기가 아니라 권력분점형 개헌을 한다잖아. 그게 그 소리 아냐? 꼭 그렇게 부정적으로만 볼 건 아니지. 다만 권력분점 개헌을 한다고 해도 그것이 권력나눠먹기가 아니라는 국민의 신뢰부터 얻어야겠지.

내 말이 그 말이야. 이인제씨는 그러대. 가장 큰 개혁 중의 하나가 이번 대선에서 정권을 잡는 것이라고. 그건 그가 할 수 있는 말이라고 쳐. 하지만 잡탕의 ‘반창(反昌) 연대’로라도 정권만 잡으면 개혁이라는 것에 다수 국민이 고개를 끄덕일 수 있겠어? 그야 우리 매미들이 걱정할 일은 아니지. 그 정도 속내야 국민이 충분히 읽지 않겠냐고.

아무튼 반노(反盧) 세력이 집단탈당을 할 거라던데 그렇게 되면 결국 민주당이 쪼개지는 것 아냐. 글쎄, 탈당을 하더라도 몇 명이나 나갈지는 좀 더 두고 봐야겠지. 두고 보긴 뭘 더 두고 봐. 난 당장 갈라서야 한다고 생각해. 서로 원수처럼 대하는 세력이 마지못해 한 당에 있는 건 국민에 대한 기만이라고. 그럴 바에는 차라리 갈라서는 게 솔직하다고 봐. 그런 다음 자기 색깔로 국민 심판을 구하는 것이 떳떳하다고 생각해.

아, 이제 그만들 하자고. 우리 매미가 뭐라 한들 저들이 듣기나 하겠어. 우리 걱정이나 하자고. 이 아파트가 재개발되면 어디 가서 살지.

한낮의 햇살은 뜨겁고 매미들이 다시 운다. 자지러지게 운다.

전진우 논설위원 youngj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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