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평양통일대축전에서 발생한 불상사는 남측 대표 중 일부가 정부와 한 약속을 어기고 당초 참석하지 않기로 한 평양 교외 통일탑에서의 개·폐회식에 참가한 데서 비롯되었다. 이 과정에서 대표단 내부에도 심각한 의견대립이 있었다.
▼8·15대회 충돌 없었지만…▼
그러나 올해는 민족통일대회를 맞아 국내의 보수세력이 통일행사 반대 시위를 벌여 우리 내부의 뿌리 깊은 보혁 갈등이 분출됐다. 대회를 앞두고 북한 대표들이 서울에 도착하던 날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는 보수 성향의 ‘자유시민연대’가 굴욕적 대북정책 및 북한의 위장평화공세 규탄대회를 열고 이번 행사가 북한 당국이 꾸민 대남 교란 책동에 불과하다고 비난하면서 김정일의 얼굴 그림과 인공기를 불태웠다.
민족통일대회의 문제는 이 행사를 남북간의 순수한 민간교류로 이끌어가려는 흐름과 특정 방향의 통일운동으로 밀고 가려는 흐름이 서로 대립하는 데 있다. 이것은 남북 양측 주관 단체의 성향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 통일대회의 북측 주관자는 민족화해협의회(민화협)이고, 남측 주관자는 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민화협)와 7대 종단 및 진보 성향의 통일연대 3개 단체다.
북한의 민화협은 1998년 발표된 김정일의 ‘민족대단결 5대 방침’에 따라 발족한 대남 통일전선기구다. 통일부에 의하면 ‘민족대단결’이란 민족간의 접촉 대화, 그리고 연대 연합을 통한 반미 자주 및 연공(聯共) 연북(聯北)을 실현하는 것을 뜻한다. 이 목적을 위해 북측의 민화협은 바로 그 해부터 8·15 공동행사를 남측에 제안했다.
이번 서울대회의 기조도 이런 배경 때문에 ‘우리 민족끼리’라는 문구였다. 북측은 대회기간 중 말끝마다 ‘민족자주’와 ‘민족공조’, 그리고 ‘자주통일’을 강조했다.
남측 민화협은 북측 민화협에 대응하는 기구로 발족했으나 성격은 전혀 다르다. 이 기구는 한나라당이 참여를 보류하고 있지만 대체로 보수 진보 성향의 각 정당 및 사회단체를 망라한 범국민협의기구다. 남측 민화협은 남북교류사업과 함께 통일문제에 대한 국민적 합의를 도출하는 것을 기본목적으로 하고 있다. 따라서 이 기구가 8·15 행사를 북한의 민화협과 1 대 1로 공동 주최하는 것이 당연한데도 북한측은 민화협을 어용기관으로 규정하고 상대하지 않겠다고 나옴으로써 혼선이 생긴 것이다. 결국 민화협은 ‘통일행사추진본부’라는 별도 기구를 만들어 여기에 통일연대와 7대 종단을 넣음으로써 민화협 따로, 추진본부 따로의 기형적인 모습이 되고 말았다. 이런 구성방식이 문제들을 일으킨다.
통일연대는 범민련과 한총련을 포함한 진보적 통일운동단체들의 연합체로 그 대표들이 작년 평양통일대축전에서 남측 민화협과 7대 종단 대표들의 만류를 뿌리치고 정부와 한 약속을 파기하는 행동을 서슴지 않았다. 이 기구는 외세(미국)와 국내 보수세력을 ‘반통일세력’으로 규정하고 이들의 ‘통일 방해활동’을 무력화함으로써 6·15공동선언을 실천한다는 기치 아래 결성되었다.
▼남북교류 앞두고 골 깊어져▼
당초 이번 행사는 올림픽 펜싱경기장에서 5000명이 참석한 가운데 대대적인 규모로 진행할 예정이었다. 그러나 서해교전 후 싸늘해진 국민 여론을 의식한 정부가 그 규모를 500명 이내로 축소하고 집회장소도 워커힐로 한정했다. 만약 정부가 대규모 집회를 방치했더라면 그 결과는 어떠했을까. 통일연대는 이번에도 통일행사를 ‘반통일세력’, 즉 보수세력을 ‘대중의 힘’으로 ‘제압’하는 기회로 만들겠다고 공언했었다. 북한의 민화협 역시 “이번 공동행사는 외세와 반통일세력에 타격을 줄 것”이라고 밝힌 만큼 올림픽 펜싱경기장에서의 ‘반미 자주 통일’의 함성이 서울 장안을 진동시킬 것을 은근히 기대했는지도 모른다. 지금 국내 보수세력은 두 개의 전선(戰線)을 마주하고 있는 셈이다.
따지고 보면 이번 서울행사가 조용하게 치러진 것도 정부의 개입이 큰 요인이었다. 우리 사회 내부의 보혁 갈등은 이번에 정부의 개입이 없었더라면 그만큼 더 커졌을지도 모른다. 보혁 대립은 형태만 다를 뿐 작년에 이어 올해도 계속된 것이다. 앞으로 잇따라 있을 남북교류를 앞두고 점점 심해지는 우리 내부의 보혁 갈등이 우려된다.
남시욱 언론인·성균관대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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